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영화제가 15일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열렸다.

20일 '세계난민의 날'을 맞아 난민인권네트워크와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가 주최한 제5회 난민영화제였다.

영화제 주제는 'I HEAR YOU-당신이 들려요'였다.

터키-시리아 국경의 난민촌에 사는 8살 소녀 에블린의 삶을 녹인 'Resistance is life'. 고국을 위해 저항하는 에블린의 모습이 담긴 다큐멘터리다.

에블린의 영웅인 쿠르드 여성 투사들은 IS무장세력의 맹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의 고향 코바니(시리아 알레포 주의 도시)를 지켜내고 있다.

에블린은 우리에게 가장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희망과 회복력이 우세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우리를 국경 양쪽에 있는 다양한 저항의 얼굴들을 소개하는 여행으로 이끈다.

영화제에서는 배우인 정우성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가 세계 난민 지역을 다니며 직접보고, 듣고 느꼈던 여정들을 소개한 3편의 다큐멘터리도 상영됐다.

난민영화제는 우리사회에 여러 물음을 던진다.

1년 전. 제주도에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들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난민 수용 찬반론이 격하게 대립했다. 찬반을 요약하면 '난민 보호 국제사회 일원으로 당연한 의무'와 '자국민 안전 우선'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정작 난민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듣는 데에는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이슬람 문화권이라면 '범죄와 테러'라는 선입견을 덧대 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하지는 않았는지, 또 우리사회는 난민을 포용할 제도적 시스템을 갖출 준비가 돼 있었는지 등 우리에게 큰 화두를 던졌다.

1년이 지난 지금. 부정적인 뉴스로 사회면을 채운 예멘 난민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정부는 지난해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 484명 중 2명만 난민으로 인정했다.

2명은 언론인 출신으로 이들은 후티 반군과 관련된 비판적인 기사를 작성해 납치·살해 협박을 받았고 향후에도 박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했다는 게 정부측 설명이다.

그 외 339명에게는 일정기간 체류를 허가하는 '인도적 체류 지위' 결정을 했다. 이들은 취업은 할 수 있으나 교육이나 의료보험 등 대부분의 제도권 밖에 있는 신분이다.

지금은 전국 곳곳에 흩어져 여느 사회구성원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의 삶은 불안 그 자체다.

정부가 2명의 난민 인정으로 사회갈등을 임시 봉합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우리나라가 2013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하면서 인권국가를 표방한 지 어느덧 6년이 흘렀다.

1994년 4월 최초 신청 이후 지난해 말까지 우리나라에 난민 신청을 한 사람은 4만8900여명이다.

이 중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것은 930여명(1.9%)에 불과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난민 인정률 25%에 한참 못 미친다.

엄격한 난민 심사와 이민 정책을 펴는 것으로 예상하는 미국의 경우도 평균 40%를 난민으로 인정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2017 UN글로벌 동향 보고서'를 보면 그해 예멘 난민신청자의 인정률은 58.1%다.

국제사회가 그만큼 예멘 내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UN도 지난해 예멘이 '세계 최악의 인도적 위기에 직면했다'고 경고할 정도다.

전 세계 난민 수는 약 7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제주도에 온 예멘 난민은 그 중 극소수다.

다른 나라들은 인도적 체류 허가자들에게도 '의료보험, 자녀 교육, 가족재결합' 등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가 있는데 우리는 없다.

대한민국의 난민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가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사람들도 우리사회 구성원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와 함께 난민을 결정하는 시스템도 촘촘히 갖춰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을 삐뚤어보는 사회 시선도 사그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무부가 최근 '부적격 결정' 제도 신설, 난민심사 기회 축소 등 진입 장벽을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난민법·출입국관리법 개정을 추진 중이어서 우려스럽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06년 차별금지법 제정 정부 권고, 2007년 법무부의 법 제정 예고 이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보다 못한 UN은 2017년 10월 대한민국 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2009년에 이어 재차 권고했다.

정부는 인권국가에 걸맞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우선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국제사회에 발맞춰 전향적인 자세로 난민 문제를 풀어야 한다.

/정재석 경기본사 사회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