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인천을 읽다] 격포
[시, 인천을 읽다] 격포
  • 인천일보
  • 승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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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포에 간다는 것은

사소한 나만의 일몰을 가진다는 것!
머리통만한 물거품과 폭설이
서쪽 바다를 죄다 세로로 앞장세웠다가
가로로 눕히곤 한다
나에 속한 죄를 끄집어내어
바다에 헹구어본다
아귀가 맞지 않는 날의
오물이 자주 막히는 몸이 싫다
구석바다에 쪼그려 울어보기도 한다
갈라터진 마음마저 염전으로 맡기고픈
격포에선
무엇이든 다 눈동자가 있어
그리 많은 눈이 내리는가 보다
무엇도 용서할 수 없었던 내가
아무에게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시선을
받아들였던 격포
아직 날은 어둡지 않은데
벌써 눈뜨는 불빛은 무어냐
거기 옹이처럼 박히자

- 시집 <기억들>(세계사) 중에서

/송재학 

일몰은 낮이 저물고 또 하나의 세상이 새롭게 태어나는 시간이다.

또 하나의 세상을 갖고 싶어 채석강 너른 바위 위에 들끓는 번민의 덩어리를 널어놓고 "나에 속한 죄를 끄집어내어/바다에 헹구"는 행위를 통해 화자가 속됨을 "용서"받았던 격포 바다.

해가 기우는 어스름. 격포바다에 옹이처럼 박힌 채 어둡지 않은 먼 풍경 속에서 눈뜨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용서하는 것이 곧 용서를 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전하는 화자의 말이 깊다. "아귀가 맞지 않는 날의/오물이 자주 막히는 몸"으로 매 시간마다 정신을 놓고 사는 우리들의 삶을 한 번 더 돌아보게 하는 시다.

/주병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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