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음식 맛보는 모두가 '임금님'
▲ 윤석분 궁중요리 장인은 "어떤 요리든 정성과 마음이 제일 중요합니다"라면서 요리 비법을 소개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 윤석분 궁중요리 장인의 작품인 '소고기 곱창 전골'

 

 

▲ 윤석분 궁중요리 장인의 대표 작품인 '배찜'

 

 

 


50년 전 귀향한 한희순 상궁 만나
수라상 올리던 비법 전수받아
끝없는 연구 50가지 궁중요리 터득
각종대회서 대통령상 등 30개 수상
38년째 이웃에 송편·김장 나눔도

조선왕조의 궁중요리는 2003년 평균 시청률 45.8%를 기록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대장금> 덕분에 대중에게 친숙해졌다. 해외에서도 <대장금>이 99개국에 수출, 방영되면서 전통 한국음식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다. 궁중요리는 이제 대한민국의 인기 요리가 됐다. 드라마 주인공 장금이가 궁중요리로 최고 정점에 이를 때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장금이의 손을 대신한 이가 있다. 윤석분(68) 장인은 조선 시대 마지막 상궁으로부터 요리 비책을 전수받아 50년을 장금이로 살았다. 궁중요리의 달인, 윤 장인을 지난 5일 만났다.

#조선 마지막 주방상궁의 제자

조선왕조의 궁중요리는 고려왕조의 전통을 이어 온 조선 궁궐에서 차리던 대표적인 한식이다. 조선왕조의 몰락과 함께 잊혀질 뻔 했으나 근대에 이르러 민간으로 전수되면서 임금만이 먹을 수 있던 음식을 대중들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윤석분 장인은 조선의 마지막 주방 상궁이었던 한희순씨로부터 궁중요리 비책을 전수받아 수십년간 궁중요리의 대중화에 힘써왔다. 그는 궁중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넘친다.

"50여 년 전 조선의 마지막 수라 상궁이었던 한희순 선생이 고향인 남양주 마석에 내려왔었어요. 남양주 토박이었던 제가 한 선생님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입니다. 이때부터 궁중요리의 매력에 빠져들었지요. 맛은 둘째 치고 조리 과정을 익히는 데만 15년이 꼬박 걸렸네요."

조선왕조가 몰락하기 직전까지 궁중 요리를 해왔던, 조선 시대의 마지막 주방 상궁 한희순(1889~1972)은 궁중의 조리 비법을 그대로 전수했다. 한희순 상궁은 한국 음식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궁중음식을 계승·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조선의 마지막 주방 상궁이다.

13세에 덕수궁 주방의 나인으로 들어가 경복궁·창덕궁을 거치면서 고종과 순종의 음식을 담당했으며, 창덕궁 낙선재에 거주하던 마지막 왕족인 순종의 계비 윤비가 별세한 1966년까지 궁중에서 음식을 만들었다.
이후 1970년 조선왕조의 궁중음식이 국가 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면서 오늘날까지 우리 고유의 화려한 궁중 식문화의 전통을 이어올 수 있게 됐다.

#50가지 이상의 궁중요리 구사

한희순 상궁이 설파한 궁중 비책을 몸소 전수 받은 이들 중 한 명인 윤 장인은 부엌을 친구 삼아 살아온 세월만 반백년이 넘는다. 끊임없는 연구로 세월의 겹이 쌓이자 하나만 터득해도 대단하다고 여길 만큼 까다로운 요리법인 궁중요리를 그는 무려 50가지를 넘게 구사한다. 궁중요리는 수라, 죽, 면, 만두와 같은 주식류를 비롯 탕, 찜, 전골, 볶음, 구이, 적, 편육, 육회, 어회, 다과, 약과, 식혜, 수정과, 배숙 등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에 이른다.

"어린 시절부터 손에 물이 마를 일이 없을 정도로 부엌을 들락거렸죠. 대대로 방앗간과 식당을 운영해오면서 가업이나 마찬가지였던 음식을 다루는 일을 1남 3녀 중 유독 음식 솜씨가 좋았던 제가 도 맡았습니다. 덕분에 음식을 습득하는 속도가 빨랐고, 완벽에 가까울 만큼 많은 궁중요리를 할 수 있게 됐죠. 그중에서도 두텁떡과 배숙은 가장 자신 있는 요리 중 하나입니다."

유년 시절, 당시 서울과 강원도를 오가던 길목에서 주막집을 운영하던 부친을 뒀던 탓에 셋째 딸로 태어난 윤 장인은 부친의 일손을 거들며 음식 만는 법을 익혔다. 집안일이나 주방 일에는 도가 터 동네에서도 내로라하는 살림꾼으로 불렸다. 성인이 되고부터는 집 근처 학교에서 가정 교과를 맡아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쳐 왔다.

"처음에는 천안에서부터 남양주로 상경한 교사들의 식사를 마련하는 일을 했어요. 음식 솜씨가 좋았던 덕분인지 당시 부족했던 선생님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가정교사로 요리나 가계 살림에 대한 교육을 맡게 됐습니다."

#30여개 상 수상한 요리왕은 봉사왕

윤 장인은 출중한 요리 실력에 버금가는 화려한 수상 이력을 자랑한다. 각종 요리 대회에 나가면 항상 최고상은 그의 몫이었다.

"국내 최고의 요리경연대회였던 KBS 가족요리경연에 경기도 대표로 처음 출전했습니다. 개성 지방의 갈비인 개성 종갈비를 들고 나갔지요. 운이 좋게도 첫 출전한 대회에서 수상을 하게 됐습니다."

이후에도 각종 크고 작은 요리 대회를 섭렵하며 그는 30여개가 넘는 상을 휩쓸었다. 요리인으로서 영광스러운 대통령상도 2008년 수상했다.

"궁중요리로 쾌거를 이뤘습니다. 상이 전부는 아니지만 매우 기쁜 순간들이었지요. 최고의 장인에게 주어진다는 2000년 경기도 으뜸이로 선정된 것과 경기도 여성상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윤 장인의 업적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그의 솜씨를 배우기 위한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 들었다. 청와대에 김치를 납품하기도 했던 그의 김치 비법은 제자들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요리법 중 하나다.
뛰어난 궁중요리 실력의 소유자로 인정받은 윤 장인은 무려 38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해온 '봉사왕'으로도 불린다.

"오랜 시간 봉사활동을 해온 것은 나보다 누군가를 위해 사는 삶이 행복하기 때문이지요. 추석·설날 명절에 지역 어르신들에게 송편이나 김장김치를 나누는 일, 또 지역의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지원하는 일은 정말 보람있습니다. 요리에 재능이 있어 감사하고, 음식을 통해 정을 나눌 수 있어 감사합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