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이작 풀등(김성환, 2015)


물이 서서히 빠지기 시작하자 그녀는 수줍은 듯 고운 자태를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몇 년을 벼르고 별러 드디어 온 몸으로 그녀를 맞이하게 된 나는 그녀의 부드러운 품속으로 온 몸을 던져 버렸다. 그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되었다. 그녀는 바로 인천이 자랑하는 '풀등'이다.
풀등은 바다 위 신기루다. 하루 두 번 물이 빠지는 썰물 때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옹진군이 숨겨놓은 많은 보석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자월면 대이작도에 딸린 이 모래섬은 수많은 방문객들에게는 기회만 된다면 꼭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다.
계절을 고려하는 건 기본인데다 물이 빠지는 시간대를 맞추어야 하고, 무엇보다 날씨와 같은 기상 상황까지 면밀히 검토한 후에야 촬영을 허락하는 이 귀한 풀등에 나는 운 좋게도 두 번이나 들어갔다. 그 때마다 억누를 수 없는 벅찬 감정을 추스르며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충남 태안 신두리 사구와 옹진군 대청도 사구와는 또 다르게 배를 타고 들어가야 밟을 수 있는 모래섬이다.
길이 3㎞, 너비 1.2㎞ 규모의 거대한 풀등은 애석하게도 그 규모가 점점 축소되어 가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그리 머지않은 시간에 그 품 안에서 등 베고 하늘을 보는 것이 먼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른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 대한 '풀등의 경고'를 우리는 지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올여름 어김없이 나는 다시 풀등 행을 서두를 것이다. 사라지기 전에 그 등에 올라타 셔터를 누를 것이다. /포토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