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경 논설위원

6월 초 한낮 30도를 넘던 때이른 더위가 한줄기 빗자락에 수그러들었다. 기상관측 이래 최고를 기록한 지난 여름 폭염에 데여서인지 벌써부터 올 여름이 걱정된다. 지난해 한반도를 뒤덮은 여름 무더위는 111년만에 가장 덥고도 길게 이어진 폭염으로 기록됐다. 신기록 경쟁하듯 하루가 멀다하고 최고 기온을 갈아치웠다. 피해가 잇따르자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규정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도록 법도 바꾸었다. 지난 여름 폭염은 자연앞에 인간이 얼마나 미미하고 보잘것 없는지를 몸소 깨닫게 했다. ▶폭염 피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면서도 소리없이 다가온다. 태풍이나 홍수로 산이 무너져 내리거나 도시가 파괴되는 눈에 보이는 무서움이나 공포는 없다. 하지만 이들 재해 못지 않은 인명피해를 불러온다. 2003년 서유럽을 덮친 기록적인 폭염으로 약 3만500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만 1만4000여명이 숨졌다.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에 지옥과 같은 더위가 5일 동안 이어지면서 700여명이 숨졌다. 당시 기상예보 책임관이었던 폴 데일리(Paul Dailey)는 "우리는 무더위가 오고 있는 것을 예보했지만 살인적일 정도로 심각하다고 인식하지는 못했다"며 "더위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시신이 주택가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움이 우리를 엄습했다"고 했다. 폭염이 얼마나 무섭고 우리가 폭염 피해에 얼마나 무심한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지난해 여름. 낮 최고기온이 40도를 넘는 건 놀랄 일도 아니었다. 병원 응급실이 온열환자로 넘치고 농작물은 한낮 불볕 더위에 녹아내렸다. 가축 수백만마리가 폐사하고 양식장 물고기도 떼죽음을 당했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60여명에 달하는 등 20세기 이후 최대 폭염 피해를 기록했다. 마침내 법까지 바꾸었다.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규정하고 중앙 및 지방 정부가 피해 지원과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도록 했다. 정부는 개정된 법에 따라 지난해 폭염으로 숨진 66명에 대해 1000만원씩 지원했다. ▶폭염은 불평등 재난이라고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일수록 더 깊고 큰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한여름 선풍기마저 틀기 어려운 쪽방촌 사람들에게 폭염은 무서운 재앙이다. 폭염 대응은 우리 사회가 책임지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이라 해서 더 많은 재난 피해를 입는다면 평등하지 못한 사회다. 올 여름도 폭염이 예상된다고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많은 관심을 갖고 불평등으로 인한 피해가 없도록 살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