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자유·평화, 수많은 희생이 있었기에…"
▲ 왼쪽부터 안효승, 하은수, 진성일 6·25 참전유공자.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등 '비극'
벌써 66년 흘러 … 교훈 되새겨야
"평화바라는 마음 누구보다 절실"



"양성면 고개에서 피난민들이 인민군의 포위에 둘러싸였고 우리들은 덜덜 떨었고 대부분 그 자리에서 잠들었어."

안성시 6·25참전유공자들에게 6·25전쟁은 마치 얼마전 일인 것만 같다.

하은수(88)유공자는 "보개면 구사거리 주변에 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고, 마을 곳곳에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벌써 66년이 흘렀다.두 번 다시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역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안성시의 그날은 어땠을까? 안성시 향토자료와 6·25참전유공자들을 통해 당시 안성시의 모습을 회상해 본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25일 세계전쟁사상 유례가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시작됐다. 6월28일 서울 시내가 점령된 후, 7월5일 제24사단 스미스부대마저 무너지며 안성은 인민군이 점령하며 촛불처럼 아스러져갔다.

1951년 9월1일 기준으로 피해 입은 사람은 882명(남자 530명, 여자 352명). 이는 공식적인 통계일 뿐, 비공식적인 수치까지 더하면 그 피해를 가늠할 수 없다. 특히 미양면 소머리 고개, 죽산면 죽산리, 보개면 기좌리, 놋박재 등 곳곳에서 민간인 학살사건이 발생하여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당시 곡식을 공납에 빼앗겨서 매일 배를 곯아야 했던 진성일(89)유공자는 "평택 사격기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매일 두려움에 떨었다"고 말한다.

안효승(90) 유공자는 "작은 계란 크기의 밥과 소금물로만 먹고 버티다가 입대 후에는 직사포를 맞고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졌다가 겨우 살아났다"고 당시를 회상 했다.

이들은 참전유공자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라며 입을 모아 말했다. 6·25참전유공자회 하은수 유공자는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이런 평화를 거저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많이 안타깝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들은 "전쟁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누구보다 절실하다"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수많은 동료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후대가 잊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은수 유공자는 "지금의 우리들은 6·25참전유공자들이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켰기 때문에 살아 있는 거야. 그걸 잊지 않고 유공자들에 대한 예우를 잘해야 이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성=김태호 기자 thkim@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