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예나 지금이나 영화를 좋아한다. 칠흑같은 공간에서 스크린에 빠져 들면 기사 마감시간도 잠시 잊을 수 있다. 문학, 음악 등에 비해 늦게 태어난 영화는 그 어느 예술 장르보다 사실성이 강점이다. 그래서 신분이나 재산, 학식에 구애받지 않고 대중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다. 그 대중들은 영화관을 나오며 그저 '야, 재미 있다' 아니면 '본전 생각난다' 등으로 평가한다. '신랄한 풍자'니 '페이소스' 등은 전문가들 용어다. ▶영화 소비 행태도 많이 달라졌다. 집에서도 리모컨만 눌러 온갖 영화들을 보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냥 스마트폰으로 큰 뉴스를 읽은 느낌이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바뀌면서 스크린 스케일도 쪼그라들었다. 과거 충무로 대한극장의 그 광대한 스크린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3개 업체가 독과점하고 있는 영화관 시장에는 영화 메뉴도 독과점돼 있다. 그들 업체들이 투자에 참여한 영화들에만 스크린을 배정해 놓으니 관객들은 선택의 여지도 빼앗겨 버렸다. ▶개인적으로는 국산영화에 대한 호감도와 신뢰도가 낮은 편이다. 낮은 신뢰도라는 것은 기껏 돈을 내고 보러 갔더니 나올 때는 '돈과 시간만 버렸다'며 자주 후회했다는 얘기다. 20~30년전 국산영화는 천편일률적인 여배우 벗기기였다. 전후 맥락도 없이 장면만 바뀌면 또 벗기는 묻지마식 '에로'물들이었다. 21세기 들어서는 또 묻지마식 '정의의 사도'물들이 판을 쳤다. 영화마다 검사, 변호사, 기자, 경찰 등이 주인공이었다. 이들 직업의 현실과도 동떨어진 군상들이 맹활약을 펼친다. 마치 정의와 도덕에 굶주린양 엔딩 자막이 오를 때까지 울부짖는다. 이들 영화에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것은 핏빛 폭력이다. 온갖 흉기가 다 등장하고 객석에까지 피가 튈 지경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기생충'을 보러갔다. 방송에 소개된 시놉시스(줄거리)만으로도 기대가 한껏 부풀었다. 일가족의 위장취업이라니, '캐치 미 이프 유 캔'같은 사기꾼 얘기인가. 게다가 '블랙 코미디'라고 하니 얼마나 재밌을까. 전반부까지는 "'역시나" 하며 몰입돼 갔다. 그러나 갑자기 스크린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장르를 넘나든다더니 왕년의 홍콩 누와르로까지 넘어온 느낌이었다. 더구나 그 핏빛 난장판의 복선이 '행주·지하철 냄새'라니, 절묘했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불편했다. 역한 피비린내 없이는 작품 완성도가 불가능했을까. 또 한가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삶은 늘 그렇게 남루하고 비루한 것이기만 할까. 영화는 영화로만 보라고 했는데, 예술을 모르는 아마추어의 푸념일 뿐이다. 그래도 칸의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자막없이 편히 볼 수 있으니 그것만도 '봉준호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