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 인천녹색연합회 초록교사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말이 있다. 사람의 일에 최선을 다한 후에 하늘의 명을 기다리라는 의미이다. '천명'은 하늘의 일이니 어찌할 도리 없어도 '진인사'는 인간의 일이니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게 참 어렵다. 어디까지가 진인사일까. 결과에 상관없이 더 할 것이 없다는 본인의 만족감이 느껴지면 진인사일까.
시험을 앞두고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도 막상 뚜껑을 열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조금 더 했어야 했나'하는 후회가 남는다. 이럴 경우 진인사의 기준은 내가 최선을 다한 것에 있지 않고 결과에 있다.
사람간의 관계에서 본 진인사는 어떨까.
막내가 돌 때부터 드나들던 치킨집이 있었다. 동네 친구와 주말이면 참새방앗간 들리듯 그 집을 찾았다. 막내는 그 치킨집에서 유모차시절부터 유치원 졸업반까지의 시간을 보냈다. 주인장과도 집안 대소사를 대략 알 정도의 사귐이 있었다.

5월 어느 날 여행의 피로를 시원한 치맥 한 잔으로 날릴기대에 부풀었다. 아뿔사! 2주 사이 주인장이 바뀌어 있었다. 아무 예고 없이 장사를 접은 주인에 대한 섭섭함과 배신감에 속이 쓰렸다. 적어도 우리 같은 단골에게 "가게를 접는다"는 언질 한 마디는 있어야 하는 게 도리인 듯 싶었다.

얼마 전 단골 커피집이 문을 닫았다. 영업 종료 한 달 전에 문을 닫게 되었노라 이야기했다. 값이 조금 비싸긴 했으나 꽃향기가 섞인 독특한 커피를 한동안 맛보지 못하리란 생각에 자주 가게를 찾게 됐다.
주인장의 사생활에 대해 아는 바는 거의 없다. 다만 커피에 대한 남다른 열의가 있다는 것과 '20여 년 간 커피에 대한 생각만 하고 살았노라고 지금 여기서는 문을 닫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 어디선가 또 커피숍을 할 것이라는, 그리고 그동안 찾아와 주신 여러분에게 정말 감사를 드린다'는 편지를 영업 종료 파티에 참석해서 받았다. 정성들여 내렸을 더치커피 한 병을 안겨 주며 고마웠노라고 말하는 주인장을 보며 진인사를 생각했다.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겨 주는 사람. 그리고 그것에 감동 받는 고객, 아마도 다른 곳으로 옮겨 가게를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달려가리라.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은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 경험하는 일의 70%는 사람과의 일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삶과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일입니다." 언젠가 신영복 선생을 추모하는 숲길에서 마주친 글귀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마지막은 좋은 시작을 안내할 것이다. 시작을 안 하면 또 어떠랴. 어찌보면 진인사는 자신이 가진 것을 긍정하는 마음이다. 그것은 원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에 자부심을 갖고 정성을 다함이 진인사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사물이 지닌 뒷모습이다. 뒷모습까지 아름다워야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그때야 천명(天命)도 움직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