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광역도시계획 '무색'

▲ 그린벨트가 해제된 인천 계양구 장기동 인근에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목표 연도가 불과 1년 남은 '2020년 수도권 광역도시계획'. 인천시와 서울시, 경기도가 공동 수립하는 20년 단위 수도권 광역도시계획에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의 조정·관리 방향이 담겨 있다.
4일 '2020년 수도권 광역도시계획'을 보면 인천시의 그린벨트 활용 방안은 2가지로 제시됐다. '계획적 개발 유도'와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시설부지, 대회 이후 활용도 제고'였다.

▲사라진 마을, 예견된 난개발

"그린벨트 풀리면서 공장·창고만 잔뜩 생겼어. 100호가 넘는 마을이었는데 주민이 반도 안 남았지."
계양구 이화동에서 60년 동안 살았다는 경옥수(83)씨는 "이웃들이 떠나면서 동네가 삭막해졌다"고 말했다. 이화동은 2006년 '우선해제 취락지구'에 포함되면서 그린벨트에서 풀렸다. 논밭 사이에 섬처럼 자리잡은 마을은 10여년 만에 '공장지대'가 됐다.

예견된 결과였다. 인천연구원은 2007년 '개발제한구역 해제지역의 효율적인 관리방안' 보고서에서 "이화지구 경계도로를 따라 공장이 줄지어 있으며 기존 제조업소 옆으로 새로운 제조업소가 들어서고 있다"며 "제조업소의 공간적 확산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난개발이 예상되므로 건축물 용도 관리가 요구되는 지역"이라는 경고는 묻혔다.

이화동과 함께 그린벨트에서 해제된 계양구 상야동도 마찬가지다. 시 자료를 보면 해제 직전인 2005년 168동이었던 상야지구 건축물은 현재 322동으로 92% 증가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185동은 공장이다.
박순희 상야지구대책위원장은 "공장으로 둘러싸여 소음·먼지 탓에 창문을 열 수 없을 정도"라며 "도시가스조차 공급되지 않고 생활편의시설은 전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계획적 개발'은 온데간데 없었다.

▲"비효율적 도시 공간 활용"

인천아시아경기대회(AG) 경기장 건설로 풀린 그린벨트는 1.37㎢ 면적이다. 2010년 해제된 서구 주경기장과 계양·선학·열우물(십정)·남동경기장이 해당된다. 이들 면적은 지금까지 인천에서 해제된 그린벨트(8.765㎢)의 15.6%에 이른다.

그린벨트에 신설 경기장이 몰린 건 돈 때문이었다.
2008년 4월25일 인천시의회 문교사회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당시 정대유 아시아경기대회지원본부장은 "다각도로 재원 조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린벨트에 주경기장과 선수촌 등을 짓는 것도 사업비를 축소하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도시계획보다 비용 논리에 휩쓸린 경기장 입지는 사후 활용도 어렵게 만들었다. 프로배구가 열리는 계양경기장을 제외하면 이들 경기장은 행사나 단기간 열리는 대회 정도에만 쓰이고 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5개 경기장 운영 적자는 192억원에 달했다.

변병설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는 "영국이 2012년 런던올림픽을 치르며 낙후된 공간의 도시재생 측면에서 접근한 것과 대조적"이라며 "최근 그린벨트를 해제해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도 기존 산단 가동률 저하 등을 고려하면 도시 공간의 효율적 이용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순민·이창욱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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