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0일 인천 미추홀구 관교동 자택에서 만난 최득수 옹이 6·25 전쟁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적 기관총기지 격파 앞장선 공로
태극무공훈장 받고 흉상 세워져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인천보훈지청과 인천일보가 우리지역 호국영웅을 소개합니다. 이번 기획은 일상 가까이에서 호국보훈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의미에서 마련됐습니다. 4번에 걸쳐 소개되는 우리지역 호국영웅들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아직도 6·25 전쟁 장면이 꿈에 나올 정도로 생생해. 동료들이 목숨을 잃는 모습을 두고 볼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이 …."

태극무공훈장은 비상사태 전투에 참가해 뚜렷한 무공을 세운 자들에게 수여되는 훈장이다. 전국에 이 훈장을 받은 국가유공자는 얼마 남지 않았다. 인천출신의 최득수(92) 옹도 그 중 한명이다. 6·25 전쟁 당시 이등상사 계급으로 비석고지에서 적의 기관총 진지를 파괴하고자 적진을 향해 돌격한 공로를 세운 인물이다. 생존인물 최초로 국가보훈처가 선정하는 '이달의 6·25 전쟁영웅'으로 꼽힌 바 있다.

그의 참전기는 1951년 12월 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배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훈련장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해서야 앞으로 마주할 상황을 인지한 최 옹은 3일간 혹독한 훈련을 받고 7사단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강원도에 있는 산이라는 산은 다 간 것 같다. 주먹밥을 먹으면서 산을 올라 다녔고 하늘을 지붕 삼아 추우나 더우나 산에서 잠을 잤지. 신병들이 총을 맞으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어."
대한청년단 훈련계장과 감찰부를 지낸 최 옹에게 주어진 임무는 막중했다. 몇 되지 않는 병력을 이끌어 고지를 점령해야 했고 이에 실패하면 목숨을 잃는 동료가 있더라도 철수해야 했다.

"어떤 전투를 나가든 지 병력 중 3분의 1은 목숨을 잃었어. 강원도 백석산에서의 전투가 가장 치열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 고지를 뺏겨 산을 밤낮으로 하루에 두 번씩 뛰었다. 일주일간 싸우면서 배고픔조차 잊어버릴 정도였지."

2015년 육군부사관학교에 최 옹의 흉상이 세워졌다. 창설 64주년을 맞아 자긍심을 고취하고 위국헌신정신을 계승하고자 육탄 10용사 특공대장인 고(故) 서부덕 이등상사와 최 옹의 흉상을 제막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전쟁영웅'으로 불렸다.

/글·사진 김신영 기자 happy1812@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