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 인하대 스포츠과학과 교수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는 번아웃(burnout)에 이어 게임중독까지 질병으로 분류했다. 이번 게임중독의 질병 분류는 '게임산업의 후퇴를 가져온다'라는 의견과 '게임중독자의 예방 및 치료가 먼저이다'라는 의견을 사이에 두고 벌써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 간의 논쟁이 뜨겁다.
번아웃은 이미 WHO의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ICD)에서 질병으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이번 세계보건총회에서 이를 질병으로 최종 승인한 것이다.
ICD란 질병통계 및 의료적 진단과 건강보험에서 하나의 기준으로 사용되는 지표로 2022년부터 194개 WHO 회원국에서 새로이 개정된 ICD-11을 적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번아웃은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 직장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증후군이다. 직장인들에게 나타나는 에너지 고갈 및 소진, 직무효율성의 저하, 일에 대한 부정적 감정 등의 다양한 정신적이며 신체적인 문제를 말한다. 야근이 잦고 만성 피로가 누적되고 있는데도 이렇다 할 보호조치도 없이 다시 일터로 내몰리는 한국사회에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리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근로자의 근로환경이 개선되어 가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장시간의 근로와 부족한 여가시간으로 건강, 삶의 만족, 행복감이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있다.
최근 묻지마 폭행, 약물남용, 게임중독, 자살 등의 사회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도 개인이 스트레스를 잘못 관리했거나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제대로 된 여가시간을 잘못 관리한 데에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번아웃 증후군은 처음에는 자각증세가 없이 시작되고 문제가 심각해질 때까지 인지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고조에 달하기 때문에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자칫 번아웃 증세를 무시했다가는 자해, 폭력, 자살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실로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번아웃 증후군이 의학적 진단 용어로 도입되어 있어, 진단이 확정되면 재정적인 보상이나 재활서비스의 제공도 받을 수 있다. 그만큼 번아웃 증후군을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국가가 직접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번아웃 증후군에 관한 각국의 상황을 보면, 스웨덴에서는 법적으로 질병으로 인정하는 의료진단서의 발급이 가능하고, 네덜란드에서는 작업 장애로 인정하여 직업병으로 인정하고 있다. 나아가 핀란드에서는 번아웃 증후군을 의사 진단의 질병으로 인정해 결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번아웃 증후군으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장애연금도 지원한다.

이제는 한국 사회에서도 번아웃 증후군을 개인의 병적 문제나 사회적 피해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다. 공동의 건강과 잠재적 위험 관리라는 사회와 정책의 문제로 이해하고 이에 맞는 대응을 서둘러야할 상황이다.
또한 번아웃 증후군 대상을 일반 사무직 종사자를 포함한 사회 구성원 전체로 확산시켜야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아동과 청소년의 번아웃 증후군은 세계적으로도 이슈가 되고 있는데, 한국처럼 교육열이 높은 국가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한 상태라 볼 수 있어 이들에 대한 관심과 대응은 매우 중요하다.
게임중독의 질병분류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할 것이다. 게임 산업에 영향을 미쳐 경제적 손실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치료를 목적으로 한 질병코드 등록을 추진해야 한다는 보건복지부 사이에 이견이 표출되어 부처 간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 따라서 게임중독 예방과 치료를 위한 조례 및 예산 배정 등의 근거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그간 게임 산업에만 열중해 정작 중요한 것은 잊지 않았는지에 대해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 WHO의 게임중독과 번아웃 증후군의 질병분류에 대해 정부가 현명하게 대처하고, e-sports강국으로서 한국의 위상도 잘 지켜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