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동양에서 서양으로 향하는 여행가는 부다페스트에서 처음으로 서유럽을 만난다. 서양에서 동양으로 가는 여행가는 부다페스트에서 처음 동양의 냄새를 맡게된다." 미국의 탐험가이자 여행가 로버트 피어리가 남긴 말이다. 이 도시를 수도로 하는 헝가리는 마자르족의 나라다. 나라 이름도 마자르, 국적항공사도 마자르다. 민족문학·음악도 마자르의 그것으로 분류된다. 마자르족은 본래 우랄산맥 동쪽에 살던 유목·기마 민족이다. 서기 896년 추장 아르파드가 부족을 이끌고 유럽으로 진출했다. 마자르족은 어족 분류상으로 아시아계인 우랄어족에 속한다. 오래 전 헝가리 대평원(호르토바지)에서 만난 민박집 주인장이 생각난다. 내 여권을 보다 말고 "오랜 형제"라고 했다. 그들도 우리처럼 성(姓)을 먼저 적고 이름을 뒤에 적는다고 했다. ▶아르파드 추장의 손자인 이슈트반 1세에 이르러 헝가리는 중부유럽의 강자로 부상한다. 유럽 현지화를 꾀해 크리스트교를 받아들이고(997년) 한때 모라비아(현 슬로바키아) 지방까지 석권한다. 그러나 몽골의 침입(1241)으로 온 나라가 잿더미로 변한다. 이어 콘스탄티노플을 무너뜨리고 발칸반도와 동유럽을 휩쓴 오스만 투르크에 지배당한다. 150년간이나 비엔나를 포위했던 오스만 투르크는 물러나면서 헝가리를 양분해 오스트리아와 함께 지배하게 된다. 이후 끈질긴 독립전쟁 끝에 1849년 독립은 얻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는 명목상의 이중 왕국으로 남는다. 이 바람에 제1·2차 세계대전 모두 독일편에 섰다가 소련의 위성국이 된다. ▶2850㎞의 다뉴브강은 독일 슈바르츠발트에서 발원해 흑해로 흘러든다. 영어로는 다뉴브, 독일어로는 도나우, 체코에서는 두나이, 헝가리에서는 두나강으로 불린다. 로마시대에 게르만족을 막기 위해 건설한 요새들이 오늘날 비엔나 등 도나우 연안 도시들로 성장했다. 고대로부터 민족 이동기마다 마자르족, 투르크족 등의 유럽 진출 통로였다. 중세 이후에는 동방무역로도 번성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UN기구들이 대거 입주해 있는 도나우시티도 이 강변에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An der schoenen blauen Donau)'는 빈필하모닉 신년음악회의 단골 레퍼터리이기도 하다. ▶그런 도나우강에서 유람선이 침몰해 한국인 여행자들이 대거 참사를 당했다. 인천·경기에서 간 여행객도 10명이다. 바로 그곳을 앞서 다녀온 이들도 많아 아픔이 더 생생한 듯하다. 이제 한국인 여행자들은 도나우를 그저 아름답고 푸른 강으로만 보지는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