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욱 사회부 기자

매달 25일 월급이 통장을 스쳐 지나간다. 노동의 대가는 대출금 상환과 적금, 보험금, 신용카드 이용대금이란 명목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사라진다.
그래도 수중에 남은 다만 얼마를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쌓기 위해, 더러는 고생한 나를 위로하기 위해 소중히 쓴다.
통장을 스치는 금액이 많은 달일수록 불현듯 무서운 상상을 한다. 타박타박 들어오던 이 월급이 무 자르듯 어느 순간 뚝 끊긴다면. 누군가에게 이런 상상은 더 이상 상상만이 아니다. 노동 현장을 취재하며 만나는 해고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해고는 현실이자 일상이다.
20살, 술집에서 야간 서빙 일을 하다가 술 취한 손님의 무례함을 못 견뎌 크게 싸웠다. 이 일로 보름치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

임금체불과 부당해고지만 그 땐 몰랐다. 돈이 부족했다. 데이트 횟수가 줄고 친구 선후배들과 기울이던 술잔도 점차 내려놓게 됐다. 해고는 삶의 관계망마저 좀먹었다.
부당해고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인천지방노동위원회 회의 일정에는 부당해고 구제 심판이 매주 10건 정도 잡혀 있다. 부당해고를 당해도 문제제기조차 못하고 넘어가는 숨은 사례도 적지 않을 테다. 회사라는 골리앗에 노동자 홀로 맞설 용기를 갖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필요한 까닭이 여기 있다.
지난 2월 우리 사회에 '부당노동행위'라는 낱말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MBC 임원진 4명이 부당노동행위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기 때문이다. 부당노동행위로 징역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부당노동행위는 노조 탈퇴 종용, 노조원 승진 배제 등 노조 활동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범죄다.

최근 인천 사업장에서도 비슷한 판정과 판결이 있었다. 인천지방노동위원회는 회사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는 이유 등으로 노조원 10명 중 8명을 직위해제·해고한 서인천새마을금고 행위가 노조 탄압, 즉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또 대법원은 부당노동혐의로 기소돼 원심에서 벌금 400만원을 선고 받은 인천환경공단 간부급 직원의 상고를 기각했다.
한국지엠 부평공장 정문 앞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의 천막농성장에는 이런 글귀가 걸려 있다, '해고는 살인이다'. 이 말에 하나 더 보태고 싶다. 부당노동행위도 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