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인천대 중국학술원 교수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독일에서 개최된 동아시아문화교섭학회에 참가했다. 개최 장소는 독일 남부 에를랑겐 소재의 프리드리히-알렉산더대학(FAU)이었다. 이 대학까지 가려면 프랑크푸르트, 뉘른베르크와 같은 독일의 대도시를 경유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 도시를 견학할 기회가 있었고, 그곳에서 동아시아를 바라볼 수 있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10시간 걸려 도착한 곳은 프랑크푸르트공항이었다. 프랑크푸르트는 차범근 선수가 맹활약한 독일 프로축구팀의 연고지였기 때문에 그다지 낯설지 않은 도시다. 프랑크푸르트는 1998년 설립된 유럽연합중앙은행(ECB)의 본부가 자리한 독일과 유럽의 금융센터이다. 유럽연합 28개국 가운데 경제규모가 가장 큰 국가는 단연 독일이다.

인구 8000만 명에다 GDP는 미국, 중국, 일본에 이은 세계 4위다. 독일이 유럽연합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경제력이 밑바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앞 건물에 큰 금호타이어 간판이 걸려 있었고, 에를랑겐에서 현대자동차를 발견했으며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LG전자 광고를 봤다. 만하임의 서점엔 K-Pop 가수의 독일어 화보집이 놓여있었다. 독일에서 한국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독일은 제조업 강국이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는 메르세데스 벤츠, 폭스바겐과 같은 독일 자동차회사의 자동차였다.

중국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국제조2025'는 독일과 일본의 제조기술과 노하우를 적극 도입하고 따라잡아 세계 최고의 첨단 제조국가를 만들려는 비전이다. 미국이 미중무역협상에서 '중국제조2025'를 문제삼고 있는 것은 독일과 일본에 경각심을 심어주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독일의 제도와 경제를 많이 벤치마킹했다. 헌법과 법률이 그렇고 제조업 기술도 그랬다. 독일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같은 구축국의 우방이자 패전국이었다. 이번에 방문한 뉘른베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의 나치 전범 재판이 열린 곳이었다. 히틀러가 사랑한 도시로 나치당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도시이기 때문에 연합국의 공폭을 많이 받았고, 전범 재판 장소가 되었다.

일본의 전범은 도쿄에서 재판을 받았기 때문에 도쿄재판이라 부른다. 뉘른베르크재판과 도쿄재판은 피해국의 입장에서 전범을 철저하게 단죄하지 못한 재판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독일과 일본은 패전국의 잿더미 속에서 냉전으로 형성된 유리한 국제 경제 질서를 잘 활용해 경제부흥을 일궈냈다.
자유진영 국가 가운데 독일이 먼저 미국에 이어 2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후, 일본이 고도 경제성장을 달성하면서 독일을 누르고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독일과 일본경제의 부흥은 모두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에 의해 가능했다. 중국이 '중국제조2025'의 프로젝트를 추진한 데는 이러한 독일과 일본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동·서독의 평화통일은 남북분단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선망과 벤치마킹의 대상이다. 에를랑겐에서 만난 독일인 박사과정생은 자신이 동·서독 통일의 해인 1990년에 태어났다며 큰 의미를 부여했고, 자신의 메일 주소에도 '1990'을 포함시켰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지 30여 년이 지나 동·서독 지역 간 경제 격차는 거의 사라지고 생활 수준도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개선됐다. 구 동독 지역 출신이라서 구 서독 지역 출신자로부터 차별받는 일도 거의 없다고 하니, 동·서독은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한 통일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요즘 독일 경제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 가장 빨리 진출한 서방 국가는 독일이었다. 폭스바겐과 같은 자동차회사는 중국의 자동차회사와 합작회사를 만들어 사업을 성공적으로 전개해 지금은 폭스바겐 세계 수입의 절반을 중국에서 거두고 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할 때 독일은 부품과 원자재를 대량으로 수출, 독일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중국의 제조업체가 선진국 기업의 기술이전과 기술개발을 통해 경쟁력을 향상시키면서 독일의 대중 수출이 정체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 무역전쟁을 불사하고 강력히 대처하고 있는 반면, 독일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이번 독일 방문 기간 중 중국 충격(Chinese impact)의 영향력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 충격이 한국만이 직면한 문제가 아니라 독일을 비롯한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독일 방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