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호 평택대 상담대학원 교수


요즘 여야는 서로 말싸움의 대향연을 펼치는 공연자 같다. 한쪽이 장군을 부르면, 다른 쪽은 멍군을 부른다. 한쪽에서 여경의 체력 검증이 필요하다고 하면 다른 쪽에서는 여경이 철인경기 출신만 뽑아야 되느냐며 되받아친다. 최저임금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원전에 대한 입장이 다르고, 경기 진단과 전망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안들도 그렇다. 서로 들어주지를 않는다.
모든 사안에 대해 여야가 서로 다른 입장을 쏟아낸다. 그리고 상대편의 주장에 귀 기울이고, 의미를 찾아보고, 대안적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현재 국면에서는 서로 영웅놀이에 한창이다.

사안에 대한 깊은 통찰과 대안 제시보다는 서로 시비를 건다. 전체 말의 흐름보다는 특정한 문장이나 행동에 대해 지적한다. 역사적으로 묵과할 수 없는 문제라고 규정하고, 서로 명운을 걸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리고 이것을 확대하여 살벌한 전장을 만든다. 이 공간에서 영웅이 나타난다.
영웅은 어떤 사안에 대한 싸움에서 타인을 촌철살인의 명문으로 제압하는 사람이다. 영웅으로 떠오른 사람은 승자처럼 행동한다.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 댓글에는 그를 축도하는 메시지가 쏟아진다. 영웅은 올바른 문제 제기와 대안을 만드는 대신, 악당과 싸워 이기는 전사처럼 말의 칼을 날린다. 이것이 강할수록 칭찬하는 댓글이 쏟아진다.

청와대와 야당 대표 간에도 설전이 한창이다. 자신은 고고한 척, 슬쩍 인사말에 한 두 마디 상대편이 싫어할 만한 말을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모른 척한다. 상대편도 똑같은 방식으로 되받아친다. 그들은 단 한마디라도 진다면, 그것이 정치판에서 어떻게 작용할 지를 정말 잘 아는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은 한 번 져준다고 해서 별 문제가 없지만 정치판에서는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이겨야 한다. 무조건 이기고 또 이겨야 한다. 선거 프레임에서 이겨야만 한다. 이것은 경험칙이다.
가슴 아픈 것은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문제의식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건강한 행위이며, 이를 통해 사회와 개인은 더욱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제기하는 근본적 원인이나 목적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이기고자 논쟁만 벌인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건강한 토론의 토대를 잃어버리게 된다. 생산적인 대안은 없고 말초적인 신경전만 남는다.

이는 과거 행위에 대한 정리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돌이킬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가 공과를 논하고 앞으로 다시는 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서로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정죄는 불행한 역사의 반복만을 초래할 뿐이다.
이제는 서로가 좀 들어주면 좋겠다. "당신의 이야기에서 체력 문제에 대한 지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좀 더 들어보고 싶다." "당신의 말에서 모든 경찰이 슈퍼맨처럼 기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동의한다. 새로운 대안은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 상대편도 자신도 신나게 마련이다. 이것은 이기지 않아도 되는 싸움이다.

문제 제기에 대해 싸움을 걸면, 문제에 대해서는 말도 하지 못하게 된다. 여론에 재갈을 물리는 행위이다. 그러면 서로 문제도 아닌 것을 가지고 논쟁을 시작하게 되고, 결국은 소모전으로 끝난다. 말을 잘하는 싸움 말고, 말을 잘 들어주는 지도력을 발휘하는 행위가 많아져야 한다.
한국이 여러 가지 위기 징후가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미·중 간의 경제전쟁에 따른 위기, 미래 먹거리에 대한 위기, 노사 간의 위기, 50%대에서 갈라져 있는 국민 분열의 위기, 출산의 위기, 청년 취업과 노년의 안정적 삶의 위기, 공무원의 위기 등등. 이런 상황에서는 문제를 많이 제기하고 거기에 대한 토론과 토의를 통해 집단지성을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자고로 대한민국은 위기에 강하다고 하지만, 강해서 위기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제 강한 대한민국, 강한 여야, 강한 공무원, 강한 국민을 이끌어주는 지도력을 발휘하면 좋겠다. 제발 좀 상대편의 이야기를 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