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년제도란 개인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자동적으로 일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드는 일종의 규제이다. 정년제도는 1930년대 대공황시대에 미국에서 은퇴자를 모델로 하여 고안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나이든 노동자는 은퇴하고, 대신 젊은이가 일자리를 차지하게 만들어 대공황의 사회적 문제를 타개하고자 했다. 이때 나이든 노동자가 안심하고 은퇴하려면 노후의 생계가 보장되어야만 했고 국가는 이를 위해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65세가 되면 체력적으로 은퇴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졌고 이후 65세는 전 세계적으로 정년의 기준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미국은 1978년 정년을 70세로 연장했다가 1986년부터는 정년제도를 아예 폐지했다. 정년제도 자체가 연령에 따라서 고용을 차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본 것이다. 미국의 대학에서 70세가 훌쩍 넘은 교수가 강의하고 논문을 쓰는 것이 이상하지 않게 된 이유이다.
비슷한 이유로 영국도 2006년 고용평등연령법을 제정하고 정년을 65세로 의무화했다가 2011년에 정년제도를 폐지했다. 물론 정년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정년을 계속 연장시키는 국가가 더 많다. 독일은 2029년까지 정년을 현재 65세에서 67세로 상향시킬 계획이다. 네덜란드도 2020년까지 정년을 현재 65세에서 67세로 연장할 계획이다.

한국에서 정년제도는 박정희 시대부터 정착되기 시작했다. 과거 사기업의 정년은 56∼58세였고 육체노동직의 정년은 55세였다. 그래도 1997년 외환위기에 빠지기 전까지만 해도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고용불안은 덜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저출산·고령화의 여파로 2013년부터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것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2016년부터는 상시 노동자가 300명 이상인 사업장에서 전면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사법부가 노동의 가능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인정하면서 그 여파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국의 선행지수라 할 수 있는 일본도 1998년부터 정년을 60세로 연장했는데 2016년부터 65세까지로 더 늘렸다. 일본은 2013년에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할 때 노동자가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보장했는데 그 세 가지는 65세까지 정년 연장, 정년 폐지, 60세 이후 재고용이었다. 이에 따라 2016년부터는 사실상 60세부터 64세의 취업률이 급증하게 되었고, 일본은 현재 정년을 70세로 더욱 높일 것을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최근 우리 정부가 현재 60세인 정년을 더욱 높이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더 늦지 않도록 서둘러야 했지만 지금이라도 졸속적인 대책이 되지 않도록 정교한 노력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의 가속화에 따라 한국이 이미 고령화 사회를 넘어 고령사회로 진입했고 이에 따른 대책을 종합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말이다. 고령사회에서 고령인구에게 닥친 빈곤과 질병 등의 문제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국가적 재앙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60세가 되면 정년퇴직을 한 뒤 한창 건강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못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기대수명도 늘고 건강수명도 과거와 현격하게 다른데 정년했다고 일할 데를 못 찾으니 마음부터 병이 들고, 연금이 적은데도 근로소득이 사라지면서 빈곤층으로 빠지게 된다. 2016년 기준으로 우리 사회의 65세 이상 상대적 빈곤율이 45.7%로 OECD 36개 회원 국가 가운데 최악인 수준이다. 이를 국가가 다 감당하려고 든다면 세금이 한도 끝도 없이 들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거대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국가뿐 아니라 기업과 개인의 차원에서 모두 협력해야 한다. 일단 정부는 정년제도나 연금제도에 대하여 다양한 정책적 검토 뒤에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도 일본과 유사하게 정년을 마친 퇴직자에게 재고용의 기회를 허용한 기업에 재정적이거나 세제상 혜택을 보장함으로써 실질적인 정년연장의 효과를 확보하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기업은 고령층과 청년층이 골고루 취업에서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채용정책을 보완해야 한다. 개인은 일자리를 나눌 수 있다면 임금피크제를 수용하는 등 양보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서로 타협하고 양보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모두 다 추락하는 길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달에 정부가 발표할 정년연장 대책이 어떨지 주목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