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경 논설위원

1970~1980년대. 인천시 중구 동인천역 인근으로는 거짓말 조금 보태 한골목 건너 극장이 있다고 할 정도로 많았다. 애관, 미림극장을 비롯해 지금은 없어진 키네마, 동방, 문화, 도원, 자유, 세계, 장안극장 등 열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을 정도였다. 1895년 설립된 협률사가 전신인 애관극장은 서울 단성사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 중 하나로 올해로 100년을 맞은 한국영화와 맥을 같이해 왔다.
극장 입구를 가로막는듯한 무거운 출입문과 외부 빛을 차단하기 위해 걸어놓은 두꺼운 검정 커튼을 제치고 들어가 어둠에 익숙해지기까지 한참을 서 있다가 빈자리를 찾아 앉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그 당시 극장은 한번 들어가면 횟수 제한 없이 보고 싶은 만큼 마음껏 볼 수 있었다. 2~3편의 영화를 잇달아 상영하는 동시상영관은 영화 감상은 둘째고 비내리는 스크린을 졸다 보다 반복하며 특별히 할 일 없을때 시간 때우기 최적의 장소였다.

변방에 머물던 한국 영화는 1990년대 CJ 같은 대기업이 영화 산업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맞이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영화는 너무 한국적이어서 세계화 되기 어렵다는평가속에 쉽게 꽃피지 못했다. 한국영화가 세계 무대에서 주목 받기 시작한건 2000년대 들어서다. 2002년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감독상을 받은 것이 장편 부문 첫 수상이다.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대상을, 2007년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 출연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엊그제 우리나라의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최고의 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기생충'은 다른 영화와 다르고 특별하다는 평가속에 심사위원 9명이 전원일치로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외국기자들은 유일하게 재미 있는 영화였다고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영화의 오락적 요소 즉 재미가 있을때 관객들로 부터 호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여기에 사회적 메시지가 녹아들면서 세계 최고의 영화로 선정된 것이다.

한 동안 우리 정치권에서는 입맛에 맛는 영화를 보고 이를 정치적으로 재해석해 국민을 선동하는 '영화관 정치'가 유행했다.
영화는 영화 그대로를 봐야 한다. 자신의 입맛에 맛도록 재해석해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 영화 '기생충'을 계기로 우리 영화계가 제2의 르네상스를 맞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