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이학박사

 

▲ 하얀 갯기름나물 꽃에 앉은 홍줄노린재.

24절기의 소만(小滿)이 지나 모내기로 분주하고 햇보리를 먹게 될 수 있는 망종(芒種)이 다가오고 있다. 이즈음이 되면 어지간한 풀과 나무들은 튼실하게 자라나 다양한 꽃과 초록색 잎들을 뽐내는 계절이기도 하다. 초봄의 어린 잎을 나물로 많이 이용하기도 하지만, 한껏 초록내음을 가득 품은 잎사귀를 나물로 활용하는 것도 많아지는 시기이다. 모내기, 보리타작, 김매기 등 분주한 농사일 중에 새참으로 맛보는 쌈싸름한 방풍나물은 힘들고 지친 몸과 마음에 잠시 충전감을 주는 고마운 식물이다.

방풍나물은 식방풍, 갯방풍이라고 불려지는데 원래 이름은 '갯기름나물(Peucedanum japonicum)'이다. 바닷바람 강한 해안가나 바위틈에서 잘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로 인천 도서지역의 햇볕이 잘 드는 땅과 바위 해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식물이다. 이맘때쯤 음식점에 자주 보이는 쌈채소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얀색 작은 꽃이 우산 모양으로 자라는 미나리과 식물로 한약재로 유명한 당귀, 고본, 강활 등과도 친척뻘이다. 그러다 보니 잎과 뿌리에서 특유의 향기와 맛이 나서 예로부터 뿌리는 약재로 사용을 하고 잎은 생선, 해산물과 같이 먹는 풍습이 있었다. 4월초에 나는 어린 잎은 부드러워 살짝 데쳐서 된장과 버무려 나물처럼 먹기도 하였고, 5월 이후에 나는 잎들은 살이 통통하게 올라 생으로 먹는 쌈채소로도 즐겨 먹었다.
사실 미나리과 식물들은 꽃과 잎 모양이 서로 비슷해 차분하게 자세한 특징을 관찰하지 않으면 야생에서 바로 구별하기가 어려운 식물군 중의 하나이다. '방풍(防風)'나물은 말 그대로 풍을 예방한다는 의미로 예로부터 한방의약재로 사용해온 북방계 식물인 방풍(Saposhnikovia divaricata)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약재로 쓰는 방풍은 주로 뿌리를 사용하여 왔는데 이와 비슷한 갯기름나물은 잎을 주로 먹어 사용하여 먹을 수 있는 방풍이라는 의미로 '식방풍'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기름나물과 비슷하지만 바닷가에서 자란다 하여 '갯기름나물'로 정확한 이름이 되었고, 갯기름나물과 기름나물의 잎은 연잎과 같이 물방울이 떨어지면 동그랗게 또르르 굴러가는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잎에 기름칠을 한 것 같다 하여 기름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전국 산지에서 자라는 기름나물은 줄기가 가늘고 잎이 더욱 잘게 갈라져 있어서 갯기름나물과는 구별할 수 있다. 남쪽 해안지역에서는 '갯기름나물(방풍나물)'을 갯방풍이라고도 부르는데, 이와는 반대로 북한지역에서는 갯방풍(Glehnia littoralis )을 방풍나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갯기름나물은 요즘 과학적으로도 무기질과 비타민 B군, 베타카로틴이 풍부하다고 밝혀져 감기, 두통, 발한, 거담 등의 증세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유기산과 정유 성분 또한 풍부하게 들어있어 호흡기질환과 염증 관련 질환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나물이나 쌈채소로 사용하는 것 외에도 장아찌, 볶음, 조림, 튀김 및 효소 만들기 등 각종 식재료로 많이 활용한다.

바위틈이나 해안가 등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기르기도 매우 쉽고, 여러해살이 풀이라 가정에서도 베란다 텃밭에서 손쉽게 키워 매년 향긋한 잎을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식물자원이다.
6월에 들어서 하얀색 꽃이 우산모양처럼 옹기종기 달리기 시작하고 가을철 갈색의 씨앗이 한창 무르익을 때면 어김없이 노린재과의 패셔니스타인 홍줄노린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들은 미나리과 식물의 잎과 씨앗을 좋아하여 갯기름나물에서 잘 관찰되는 노린재과 곤충이다. 광택이 나는 검정색 바탕의 몸에 눈에 띄게 뚜렷한 붉은색 계열 세로줄무늬가 특징이다.

특히 하얀색 수북한 갯기름나물의 우산모양 꽃차례 위에서의 홍줄노린재의 자태는 바닷가 강렬한 햇살 아래 어울려 사는 생물들의 멋진 풍경이 되기에 충분하다. 무더운 여름이 오면 해안가에서 이러한 풍경 하나 휴대폰 사진으로 남겨봄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