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식 경기 중서부취재본부 부국장


나치시대의 필화(筆禍)와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 두 사건 모두 책을 태움으로써 독서를 경계하고 금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대사회에서 더 큰 문제는 강제적 분서가 아닌 스스로 분서하는 행동이다. 컴퓨터와 휴대폰 등이 대중화되면서 독서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사람들 스스로 책을 몰아내는 역기능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손만 뻗으면 책을 접할 수 있는 독서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
이제 책의 선택은 자유이며 각자의 몫이 됐다. 오는 9월 청주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 독서 문화축제 '대한민국 독서대전'을 앞두고 있다. 2014년 최초 개최지인 군포지역에서 최근 해묵은 '책' 논쟁이 일고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바뀐 시장이 기존 책 사업을 일부 변경하거나 아예 축소·폐지했다며 '전임 시장 흔적지우기' 주장이 발단이 됐다. 이에 맞서 전임 시장의 특정 책 사업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충돌하고 있다. 양쪽 모두 정치적인 접근으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한대희 군포시장은 일찍이 책 사업은 시의 전략사업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접근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소통과 협치를 통한 경제우선 시책을 전략사업으로 확정했다. 이런 소신에 따라 시정버스가 발차한지 이미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에 신경 쓸 겨를조차 없다는 분위기다.
애초 김윤주 전 시장은 민선 2기 첫 취임과 동시에 고민을 시작했다. 서울의 위성도시로 뚜렷한 특산물도, 유명한 전통문화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숙고 끝에 찾은 신 성장동력은 바로 '책'이었다. '책읽는 군포'를 선언하고, 2014년 '대한민국 독서대전'을 유치했다. 정부로부터 '제1호 대한민국 책의 도시'로 지정됐다. 책 정책으로 수요자 중심에서 공감과 소통거리를 제공했다는 공은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한 시장은 후보시절부터 책을 기반으로 한 도시브랜드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천명해 왔다. 먹고 사는 일부터 아이들 교육, 일자리 문제 등이 산적한데 책만 읽는다고 문제가 해결되겠냐며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꼴은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 시장은 과거 저술가·번역가·출판기획자로 일하면서 책의 중요성을 깨닫고, 현실 경제와 정치를 알리고자 두 권의 책을 낸 경험이 있다. 독서 인프라 구축과 독서장려 문화운동, 둘 다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은 물론 도시를 대표하는 사업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특히 취임준비위 단계부터 '전임자 지우기'가 목적이 아닌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책 사업을 시민들과의 합의를 위한 소통에 중점을 뒀다. 민간운동으로 지원하되 도서관 등 독서 인프라는 확충할 계획이다. 또 민간과 협의해 독서대전이나 책마을, 그림책박물관 등은 특색있는 콘텐츠로 개발할 뜻을 분명히 했다.

결국 그는 4차산업혁명을 기반으로 미래인재 육성이나 스마트 재생을 통한 도시의 자족기능 활성화와 같은 시민이 공감할 수 있는 '책 속에 담긴 혁신 콘텐츠'에 집중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통해 그의 바람대로 품격 있는 명품도시로서 감동을 주는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길 시민들은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