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학교총동창회 창립 60주년 하와이 역사문화탐방] 대한민국 이민 역사의 태동, 인천과 하와이
[인하대학교총동창회 창립 60주년 하와이 역사문화탐방] 대한민국 이민 역사의 태동, 인천과 하와이
  • 인천일보
  • 승인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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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년 전 태평양 건넌 선조들 고된 노동 속 한인사회 일구다
▲ 하와이 첫 이민선 갤릭호가 도착한 호놀룰루 항 '알로하타워' 10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다운타운은 청명한 날씨 속에 빛났다.

 

▲ 한진우(오른쪽 두 번째) 인하대총동창회장.

 

▲ 한국이민사박물관 '인하관' 입구 간판.

 

▲ 호놀룰루 케아우모쿠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1903년 이민 첫해 인천내리교회가 개척한 해외 최초의 한인교회이다.

 

▲ 1973년 10월 인하대 하와이교포기념관(실내체육관) 준공식에는 하와이동지회 김영기 회장과 교포 일행이 초청됐다.

 

 

▲ 김형수 인천일보 논설실장.
▲ 김형수 인천일보 논설실장.

 

1902년 12월22일 인천 출신 86명 등 102명
이국땅 희망 찾아 제물포항 떠나 하와이행

사탕수수 농장서 일하며 '사진신부'와 결혼
후손들 다양한 분야서 지역 지도자로 성장


인하대총동창회는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아 지난 9일 하와이 역사문화탐방에 나섰다. 인하대는 1902년 인천에서 하와이로 떠난 대한민국 첫 공식 이민 선조들의 이주 50주년을 계기로 1954년 창학했다. 인하대 설립의 뿌리가 된 하와이 이민의 발자취를 조명하고, 디아스포라의 도시 인천과 하와이에 담긴 한인 이민역사를 3회에 걸쳐 반추한다.

우리나라 첫 공식 이민의 출발지 인천
올해는 하와이 이민 116주년이다. 1902년 12월22일, 121명의 이민 선조들을 태운 일본우선회사 소속 현해환(겐카이마루)은 웅장한 뱃고동을 울렸다. 우리나라 첫 공식 이민의 출발이다. 이날 제물포항은 한겨울 바닷바람으로 유난히 쓸쓸하고 추웠을 듯싶다.

인천 중구 월미로에 위치한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첫 이민의 과정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하와이 이민의 배경에는 하와이 사탕수수 농업 활황이 한몫했다. 19세기 말 사탕수수 농장 노동력의 70%를 일본인이 차지함으로써 노동인력의 불균형에 따른 우려가 새로운 문제점으로 부각되던 시기였다. 1882년에 제정된 미국의 중국인 입국금지법이 하와이에도 적용되던 실정이었다. 일본인들이 사탕수수 노동인력을 독점하면서 농장주와의 갈등도 불거졌다. 하와이정부가 노동인력의 다변화 정책을 수립하면서 한국의 노동자는 새로운 대안이었다.

1900년 전후의 조선은 쇠퇴 일로에 있었다. 19세기 중엽 중·일, 서양 국가 등의 통상압력은 거셌다. 1876년 부산을 기점으로 문호를 개방하게 되고, 결국 일본의 요구로 1883년 인천이 개항하기에 이르렀다. 구한말 한반도는 가뭄과 홍수로 기근이 창궐했다. 일본의 쌀과 곡물에 대한 수탈은 계속됐다. 1901년 10월 극심한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과 지방에 '혜민원'이 설치되던 시국이었다.

1902년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주협회(HSPA)로부터 한국인 노동자 이민을 요청받은 이는 알렌(H. N. Allen) 미국공사였다. 그가 고종(高宗) 황제를 만나 한국의 경제사정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민을 제안한다. 고종은 이 해 11월15일, 데쉴러(D. W. Deshler)에게 하와이 이민 모집과 송출사업의 전권을 주는 임명장을 수여했다. 다음날 고종은 '해외 여행권 발급업무를 담당하는 유민원(綬民院)을 궁내부 산하에 신설'하는 칙령을 내린다. 데쉴러는 동서개발회사(East-West Development Company)를 세워 이민자 모집과 송출에 관한 실질적인 업무를 주관하면서 한인의 하와이 이민 역사가 시작됐다.

구한말 정부의 쇠퇴뿐만 아니라 빈곤과 억압, 암울한 미래에 대한 삶의 질곡이 이민을 결심하게 된 주요 요인들이다. 새로운 이국에서 찾을 꿈과 희망도 이민 선조들이 품은 기대였을 것이다.

하와이 이민 제1진이 떠나던 1902년 12월22일의 제물포항은 영하 4~5도의 제법 쌀쌀한 겨울 날씨였다. <구한말 한인 하와이 이민>(오인환·공정자, 인하대출판부, 2004)에 나타난 그날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이민자들은 인천 내동에 위치한 데쉴러 이민사무소에 전원 집결했다. 출항에 따른 '집조(執照, 오늘날의 여권)'를 소지하고, 항해 중 주의사항과 입국 유의사항 등에 대해 안내를 받았다. 미래에 대한 낯설고 불확실한 두려움으로 해관 부둣가에 다다른 이민 선조들의 표정은 숙연했다. 쇠잔한 국운의 비통함을 달래고, 지독한 굶주림을 떨쳐버리겠다는 각오도 마음 속 깊이 새겼을 것이다.

그날을 그려보면, 월미도 밖 외항에 정박 중이던 일본우선 소속 겐카이마루 호에 121명의 이민 선조들이 승선했다. 제물포 부둣가에는 이민 업무를 담당하고 여행권을 발급해주던 유민원의 민영환 총재와 웨슬리메모리얼교회(현 인천내리감리교회) 존스(G. H. Jones) 목사, 가족과 친지 등이 배웅을 나와 기약 없는 이별에 눈시울을 적셨다.

제물포항을 떠나 이틀 후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한 이민 1진은 신체검사를 받고 최종 104명(통역 2명 포함)이 갤릭(S. S. Gaelic)호에 옮겨 타고 1903년 1월13일, 항해 20여일 만에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 도착했다.
인하대총동창회가 탐방한 호놀룰루 '알로하타워' 등대가 세워진 항구이다.

통역관 2명을 제외하면 102명의 이민 중 제물포 출신이 67명(65%)으로 압도적이었으며, 부평 10명, 강화 9명 등 인천 출신이 86명으로 전체의 84%를 차지했다. 이들은 오아후섬 북쪽 와이알루아(Waialua) 농장에서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하와이 이민은 인천내리교회 존스(한국명 조원시) 목사의 설득과 권유도 크게 작용했다. 하와이 이민이 금지된 1905년 4월까지 7415명의 한인이 하와이로 이주했다.

그동안 하와이 한인사회는 중매를 통해 배우자가 될 남자 사진 한 장만을 들고 하와이로 건너간 700여명의 사진신부가 성공적인 한인사회를 구축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들의 자녀 중에는 하와이 대법원장, 경찰국장, 시장, 교육청장, 기업인, 예술인 등 각계각층의 지도자가 배출됐다.

미국 통계국(U. S. Census Bureau)이 5년 단위로 발표하는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15년 하와이 총인구는 140만6299명이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15.6%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전체 노인인구비율 14.3%(인천 12.0%)보다 다소 높다. 한국인은 전체인구의 4만7394명으로 3.4%를 차지한다. 지난해 7월1일 기준 미 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하와이 인구는 142만491명으로 최근 몇 해 동안 소폭 늘었다.
하와이 이민 역사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은 인천에는 인하대학교, 인천내리교회, 한국이민사박물관 등이 있다.

▲인하대학교
1954년 창학한 인하대학교의 설립 배경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하와이이민 50주년 행사 팜플렛에 기록한 기념사(1953. 11. 15, Hawaii Korean Golden Jubilee Celebration, '50Years of Progress)에 잘 나타나 있다. 이영호 인하대 사학과 교수는 이 기념사를 1) 인천에서 하와이로 이주, 2) 하와이 교포들의 삶과 애국 활동, 3) 이민 50주년 기념으로 인하대학 설립, 4) 한인기독학원 매각대금 15만불의 인하대학 설립기금화, 5) 한인기독학원을 후원한 하와이 노동자들의 애국애족 정신이 인하대학의 영원한 기록으로 될 것 등으로 정리했다. 인하대학의 창학은 디아스포라 사회의 직접적인 귀환 대신에 그 정신의 귀환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인천광역시역사자료관, '하와이 이민과 인천', 근대의 이민과 인천, 2004).

▲한국이민사박물관
인천 중구 월미로 한국이민사박물관은 하와이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건립을 추진했다. 건립타당성 용역을 거쳐 착공한 지 2년 만인 2008년 6월13일 개관했다. 그동안 다양한 특별전, 미술전 등을 개최했다. 지난 2017년 9월5일에는 '새롭게 보는 하와이 韓人 독립운동 자료전'을 펼쳤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하와이 이주 50주년을 기념해 인하대학이 태동하였듯이 하와이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는 또 다른 디아스포라의 정신적 귀환을 담아낸 곳이다. 이민사박물관 1층은 한인 디아스포라의 귀환, 인하대 건립을 소개하는 '인하관'(하와이, 대한민국, 그리고 인천)이 새롭게 단장했다.

▲인천내리감리교회
1885년 제물포에 입항한 헨리 아펜젤러의 내리 선교활동의 결과 1891년 한국 최초의 예배당(White Chapel)을 건립했다. 내리교회는 하와이 이민이 시작된 첫 해인 1903년 한국 최초의 해외 개척교회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를 설립했다. 하와이 첫 이민자의 대부분이 내리교회 교인들이었고, 이들이 중심이 돼 교회를 이끌었다. 1902년 인천 내리감리교회 선교사였던 존스의 설득으로 교인 50명과 인천항 부두노동자 20여명이 하와이 이민을 지원했다.


하와이 역사문화탐방 나선 한진우 인하대총동창회장

우남 이승만 박사, 민족교육운동 헌신
이민 역사, 인천 정체성에 담아냈으면

"인하대는 1902년 제물포에서 하와이로 첫 공식이민을 떠난 선조들의 이주 50주년을 계기로 우남 이승만 박사가 설립한 대학입니다."

인하대의 창학 배경에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이민 한인들의 피와 땀뿐만 아니라 그들을 이끌었던 우남의 헌신이 서려 있다는 설명이다.

"올해 인하대총동창회는 6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하와이는 독립운동 재정지원의 전초기지였고, 민족 교육운동의 성지였습니다. 이곳 하와이에서 우남 이승만 박사가 설립 운영하던 한인기독학원을 처분한 15만달러가 인하대학 설립의 종잣돈이 됐습니다." 한 회장은 인천과 하와이, 그리고 인하대는 역사적 고리로 엮여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총동창회는 뜻 깊은 창립 60주년을 맞아 한동안 중단됐던 하와이 역사문화탐방을 재개했습니다. 4박5일의 일정 동안 우남의 하와이 교육운동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동포초청리셉션 개최 등 한인사회와 지속적인 교류 증진 방안을 모색할 계획입니다."

그는 "이러한 역사성이 지역의 정체성으로 승화되고 인천과 하와이 발전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하대학교총동창회는 1, 2회 졸업생이 배출되던 1959년 11월15일 창립했다. 동문은 17만명을 넘었다.

/하와이=글·사진 김형수 논설실장 khs@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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