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왜 항상 부끄러운가? / 미래는 왜 항상 불투명한가?
방문을 열면 / 얼굴이 화끈 / 배 속이 발끈
허기를 참지 못하고 또다시 / 너를, 너희들을 소환한다 오늘
누구나 소유할 수 있지만, / 아무나 소유하지 않는
새로운 친구가 왔단다
너희들은 서로 인사를 하지 않는다
지분을 배정받은 공유자처럼
묵묵하고 꿋꿋하다
우정 따위의 지나친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너희들이 더 많아질수록 / 너희들이 더 다양해질수록
나는 더 작아지고 적어진다
재능이 넘치면 노력이 부족해/ 시작이 창대하면 끝이 미약해
어떤 경지에 오르려다 /어떤 지경에 이를 수도 있지
현재는 왜 항상 불완전한가?
배 속을 다 채우면 / 나는 예정대로 구역질을 한다
신물나는 완벽함을 향해
빛나가면서 빗나갈 때 / 뒤쳐지면서 뒤처질 때
놀랍게도
나는 방 안에서 놀라워한다
내 방을 누가 들여다볼까봐 / 밖에 나가기가 두려워진다
눈을 감아도 네가 보인다
너희들이 빤히 보인다
아, 대체 나는 어디에 발을 들였단 말인가
내 앞에 도래하는
백지상태의 내일 앞에서,
새로운 친구같이 어색하기만 한 나는



'분더캄머'는 독일어로 '놀라운 것들의 방'이라는 뜻이다.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 특별한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사람들은 자기 방에 물건을 수집했는데, 이러한 방은 분더캄머(Wunderkammer)라고 불렸다. 과거를 담는 방 분더캄머. 그러나 과거는 항상 부끄럽기만 하다. 때문에 이 방문을 열면 매번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지만 "허기를 참지 못하고" 다시 찾게 되는 방. 과거의 방에 쌓이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시인은 더욱 더 작고 적어진다. 스스로 모은 과거의 부스러기들에 의해 스스로 묻히고 소멸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왜 과거를 소환하고 있는가? 그것은 현재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현재에 대한 불안으로 분더캄머의 세계에 몰입하게 되고 시인은 이제 그 방에 스스로 갇히게 된다. "방을 누가 들여다볼까봐 밖에 나가기가 두려워"지며 그 방을 지키기에 전력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아, 대체 나는 어디에 발을 들였단 말인가"하며 스스로 자문해보지만 이미 방은 시인의 삶 자체가 되어버렸다는 것. 불투명하기만 했던 미래는 이제 "백지상태의 내일"이 되고 있다. 텅 빈 미래 앞에서 "어색하기만 한"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가? /권경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