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 배출한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의 작품과 혼을 잃었다. 당대의 전통서예 대가 검여의 습작을 포함한 1000여점의 작품을 고스란히 서울로 빼앗겼다. 10여년 전부터 유족과 후학들이 유물로 남은 작품 기증을 인천시에 타진해 왔지만 최근 문화관광체육국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문화 행정의 인수인계 업무가 부실한 탓도 있다.
시 문화행정 안목이 수준 이하라는 비판이 거세다. 검여 유족측은 3년 전 인천시에 공문을 보내고 답신도 받았지만 결국 인천시는 모르쇠로 결론지었다. 유족들이 한때 시립박물관에 작품 기증 의사를 타진하는 노력을 펼쳤지만 수장고 부족을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검여의 작품이 서울 성균관대에 기증돼 전시회를 연다.

길이 34m 크기에 3024개의 글자를 써내려간 '관서악부(關西樂府)' 작품이 성대박물관에 처음 걸렸다. 지금까지 작품 전체가 공개되지 않았으나 추사 이후 최고의 명필이라는 세평이다. 세상을 달리 하기 전 중풍을 무릅쓰고 쓴 좌수서(左手書)에 대한 가치도 천정부지라는 평가이다.
검여의 인천 연륜은 남다르다. 1950년대 중반 인천시립박물관장, 인천시립도서관장 등을 연이어 역임했으며,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인천 시천동 출신으로 고향 인천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으리라 이해된다. 그러나 인천 스스로가 검여를 작품 속에서 불러낼 수 없게 됐다. 이 뿐이랴. 그동안 임기응변에 상황논리로 문제를 비켜가기만 한 듯한 시 문화관광체육국의 비전문성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미래 인천문화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도 박남춘 인천시장은 '문화대란'으로 비약될 수 있는 이번 사태에 특단의 조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무사안일이 시 행정부서 곳곳에 침착되지 않아야 한다. 인천시가 각종 정부 정책에서 홀대받는다는 푸념이 종종 있었지만 스스로가 인천시민을 홀대하는 문화정책으론 뮤지엄파크 조성 등 겉만 장황할 뿐 답보할 수밖에 없다.
인천시민의 문화향유를 위한 문화정책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행정 역량을 발휘하지 않고는 문화도시 실현은 요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