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순간을 붙잡으려고
▲ 44년간 성남시를 사진으로 기록해온 임재국 장인이 인천일보와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 1970년대 초 성남시 중원구 신흥동의 모습. /사진제공=임재국

 

 

▲ 임재국 장인이 사진 촬영 기술을 이용해 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임재국

 

'성남의 역사' 찍은 44년
졸업·결혼·환갑 '인생사진'부터
판자촌·고층빌딩 '도시변화'까지

'타인의 희망' 찍은 20년
어르신 8000명 주민등록사진 촬영
학생들 사진관 초대 직업체험 지원

순간의 추억을 담은 사진이 모아져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 노부부의 방에서 손주들의 돌사진, 자식들의 결혼사진, 자신들의 칠순기념사진 등의 액자를 흔히 볼 수 있다. 사진은 그렇게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하나씩 모아 사람의 인생을 기록한다. 피사체가 사람에서 도시로 바뀌면 사진은 도시의 역사를 기록한다.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실개천의 모습부터 고층빌딩이 빽빽히 늘어선 모습까지 사진은 도시의 변화를 담아낸다. 한 도시에서 수십년을 살며 도시를 사진으로 기록해온 이가 있다. 44년째 경기도 성남의 변화를 기록해온 흑백사진과 필름 수정 기술의 장인 임재국(58)씨를 21일 만났다.

#수많은 특별한 날을 담다

"자, 사진 찍습니다. 웃으세요."
임재국 장인은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사진사'다. 증명사진과 돌잔치, 졸업식, 결혼식, 환갑잔치 등의 사진을 주로 촬영한다. 그는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내면서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보람을 느낀다. 지난 1975년 형제들과 함께 성남시에 둥지를 튼 임 장인은 44년간 지역에서 사진사로 활동해왔다.

"지금은 누구나 간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예전에는 가장 기쁜 순간, 특별한 기념일 등에 시간과 비용을 별도로 들여 담아내는 것이 사진이었어요. 사진은 사람들의 행복을 담아내는 도구였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촬영하며 그 매력에 빠져 다른 일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지요."

임 장인이 처음 사진을 시작한 70년대는 흑백사진의 시대였다. 필름 값이 만만치 않았던 시절이라 사진은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순간의 미학'으로 통했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온 정성을 다해 셔터를 눌러 순간을 촬영하고, 깜깜한 암실에서 연필로 수정해가며 필름을 현상하는 과정까지 매 순간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는 그렇게 수많은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일요일이면 한 장소에서 결혼사진을 아홉차례나 찍기도 했다. 결혼커플 1만5000여쌍과 졸업식 4000여회를 촬영했다.
수많은 사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한 사람의 영정사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가 됐는데 영정사진이 없다고 연락을 해온 분이 있었습니다. 한달음에 달려가 그분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정성드려 촬영했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자식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고이 남기고 저 세상으로 떠난 고인이 저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성남의 변화를 기록하다

사진을 사랑하고 특별한 날의 촬영을 즐기는 임 장인은 카메라의 피사체를 사람에게만 맞추지 않았다. 급격한 인구 증가로 73년 시로 승격한 성남시는 시시각각 생동감 있게 변화해왔다. 임 장인은 성남시에 첫발을 디딘 75년부터 성남의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70년대의 성남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실개천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했고, 사람들은 지게를 짊어 메고 수레를 끌며 시장에 물건을 팔러 다녔다. 산 중턱을 따라 판자촌이 쭉 늘어서 있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성남 시민들은 실개천에서 물을 길어 빨래를 했어요. 성남시청 바로 옆에도 물을 긷는 펌프가 여러 대 있었어요. 시내에 사진관도 10여개 밖에 없었던 시절이죠."

그는 지형적으로 산이 많아 묘가 많고 그에 따른 제사가 많았던 성남의 지형적 특징과 시민들의 애환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 및 선거인단의 사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성남시청 직원이 그 당시 임 장인의 사진기술을 배워가기도 했다. 임 장인의 흑백사진과 필름 수정 기술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지금은 한창 재개발 열풍이 불고 있는 성남 중원구 수진동과 신흥동, 구 성남시청의 모습 등은 그가 주로 촬영한 지점이다.

"사람들을 찍다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살던 동네도 찍게 되더라고요. 특히 당시 행정기관에서 성남시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어서 시청 직원과 같이 활동했었어요. 그것들이 모여 옛 성남의 모습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역사가 됐습니다."

임 장인은 산을 넘어 골짜기에 숨은 마을의 잔치를 기록했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마을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정을 나누고 특별한 순간을 담기 위해 사진사를 대접하던 그 시절 말이다. 막걸리 한 사발을 내주던 그 때 그 시절의 정겨움을 그는 잊지 못한다.

#사진으로 지역발전을 돕다

임 장인은 필름사진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90년대 후반부터 사진 촬영 기술을 이용해 지역사회 발전에 동참하고 있다. 대한프로사진가협회 성남지부장으로 활동하던 당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진을 통해 재능기부 봉사를 시작했다.

현재의 플라스틱 형태로 주민등록을 일제 갱신했던 99년에는 거동이 불편한 8000여명의 시민 집을 찾아 주민등록사진을 촬영해줬다. 보호관찰 청소년 대상자 가정을 대상으로 무료로 '가족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하대원 복지회관에서 어르신 120여명을 모시고 '멋쟁이 사진 촬영 및 경로 위안잔치'를 열기도 했다. 학생들이 임 장인의 사진관을 방문해 '사진사'라는 직업을 체험할 수 있는 진로체험학습 자원봉사도 하고 있다.

"주위에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진으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어요. 지역아이들과 어르신들을 위한 재능기부를 이어가는 것도 지역발전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성남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성남의 변화하는 도시 모습을 계속 촬영해 기록으로 남겨놓을 계획입니다."

성남시민과 성남 도시 모습의 변화를 꾸준히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는 임 장인은 앞으로도 사진을 통해 지역의 역사를 기록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김중래 기자 jlcomet@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