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은 확실히, 간섭은 최소화 … 인천 주민자치 원칙 철저하게

정치가 위기라고들 한다. 공공갈등, 포퓰리즘, 지역구 쪽지 예산 등 오랜 기간 켜켜이 쌓여온 문제가 산적해 있다. 김영민 서울대학교 교수는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인간은 평소에 근황과 행위에 더 큰 관심을 가지다가 정체성의 위기에 맞닥뜨리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고, 그래야만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고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정치'(政治)란 무엇인가. 한자어 뜻 중 하나는 부정(不正)을 바로잡다, 즉 올바르게 다스린다는 의미가 있다. 학술적인 뜻은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 권력을 통해 한정된 자원을 나누겠다는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나눠야 올바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올바름의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정치를 관통하는 원칙은 존재한다. 바로 민주주의로부터 호출되는 자치(自治)다. 대한민국 헌법은 재권주민의 원칙을 통해 국체인 민주공화제를 천명하고 있다. 국민이 주인이 돼 국가를 다스리는 민주주의는 국민 개개인이 통치 권력을 가지고 각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스스로 결정한다. 주체와 객체가 합치하며 스스로 다스린다는 점에서 자치의 원칙이 자연스레 호출된다.

자치는 쉽게 '주권을 가진 시민 개개인이 직접 참여하는 정치'로 표현된다. 그러나 개인과 가정의 생존을 책임지기 위해 노동시장에 막대한 시간을 투입하고 있는 시민들에게 매 순간 정치에 직접 참여를 요청할 수는 없다.

따라서 현대 민주정치는 '대의제'를 통해 직접 민주주의 실현이 불가능한 현실의 간극을 메우고자 한다. 유권자인 시민이 정부와 의회의 구성원을 뽑는 투표를 하고, 청와대에 청원을 넣어 국민적 여론을 생산하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대의제라는 간접 민주주의는 선출직 정치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도덕적 해이인 주인-대리인 문제가 발생해 왜곡된 자원 배분을 발생시키고, 이에 실망한 시민들이 정치를 혐오하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등 한계가 분명하다.

그렇기에 즉자적인 실현은 힘들더라도 단계적으로 직접 민주주의를 이행하기 위해 '자치분권'이란 개념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정책 역시 생산되고 있다. 여기에 자치를 위한 제도, 그리고 자치 실현을 위해 실질적으로 어떤 권한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권 논의까지도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이 '주민자치회'라 할 수 있다. 당장 시민이 국가 정책 전체를 좌지우지 할 수는 없지만 마을에서부터 우리 동네의 작은 일들을 직접 결정하고 집행해 책임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여러 의미에서 중요한 경험이다. 앞서 말한 도덕적 해이 방지와 정치 효능감 향상, 지속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우리 정치를 서서히 바꿔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려 25년의 지방자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이 '단체자치'였을 뿐이다. '지방자치'는 '단체자치'와 '주민자치'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인데, 우리는 전자만을 경험해왔다. 유럽 등과 달리 지나치게 단체장 중심으로 흘러갔다는 점, 관이 주도하고 민이 따라가는 정부 주도의 일방적 행정이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하지만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고, 노하우 또한 생겼다. 그래서 과거와 달리 단체자치의 신뢰성이 한껏 올라간 상태다. 이제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자치회로 전환돼 정치에 직접 참여해 볼 수 있는 시기가 찾아왔다. 이미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돼 있어 명분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시행은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물론 단체자치의 일원인 시의원으로 봤을 때, 주민자치의 시작도 단체자치가 처음 도입될 때처럼 다양한 문제에 노출되고 지역에 따라서는 갈등 양상도 생길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는 이런 과정을 누가 주도적으로 풀 것인가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단체자치가 주민자치의 문제를 풀겠다고 지나치게 관여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소 복잡하고 답답해 보여도 주민 스스로 내부 문제를 해결하고 갈등을 봉합하는 과정을 겪는 것이 진정한 주민자치 실현에 더 낫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마치 비온 뒤 땅이 굳듯 말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고(故) 리영희 선생의 말처럼 지방자치도 단체자치와 주민자치가 적절한 균형을 이룰 때 완성될 수 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선에서 단체자치가 미처 챙기지 못하는 빈 공간을 주민자치가 메우고, 또 주민자치만으로는 해결이 힘든 거시적 문제는 단체자치의 힘을 빌리는 균형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