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에서 有를 창조한 '바이애슬론의 대부'

포천 일동중 부임으로 '인연'...불모지서 선수 발굴 '金 결실'
韓 대표 감독·올림픽 심판도...男 이어 女 실업팀 창단 눈앞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면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사람이 있다. 현재 교직에 몸담고 있는 류귀열(53·사진) 대한바이애슬론 이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전남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1993년 전남 군내중학교에서 교사의 첫발을 내디뎠다. 2년 뒤엔 전남에서 차로 480㎞나 떨어진 낯선 곳, 포천 관인중으로 자리를 옮겼다. 눈앞이 캄캄했다. 주변은 어둡고 주택도 별로 없는데다 기반시설은 턱없이 부족해서다.

류 이사는 "이런 곳에서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기회가 되면 빨리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포천을 벗어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운명이었다.

지난 2000년 일동중으로 부임했다. 평소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바이애슬론 선수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힘겹게 운동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바이애슬론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비록, 비전문가였지만 성공을 위해 도전하는 선수들의 눈빛에 강한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나 도전은 쉽지 않았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인해 전지훈련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비인기 종목인 바이애슬론을 하겠다는 선수들도 찾기 힘들었다.

"바이애슬론 감독 맡은걸 후회했다. 괜히 고생길을 걷는 건 아닌가 생각도 해봤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선수들에게 죄를 짓는 기분도 들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누군가의 보살핌을 기다리는 선수들을 보면서 자신에게 채찍을 내렸다.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다시 마음가짐을 다졌다. 여기저기 뛰며 발품을 팔았다. 각 단체와 지인들에게 후원을 요청했고, 학부모를 찾아가 무릎을 꿇으며 선수 발굴에 나섰다.

이러한 노력은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다.

운동을 반대했던 학부모들이 관심을 보였고, 나약했던 선수들의 기량은 날로 향상됐다. 이런 결과로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비전문가였던 류 이사에게 희소식도 날아왔다. 2009년 중국에서 열린 동계유니버시아드에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는 행운을 얻었다. 이후 경기도 바이애슬론 전무이사를 맡았다.

이때부터 얽혀있던 실타래가 하나 둘씩 풀렸다.

경기도에서 유일하게 초·중·고 바이애슬론팀을 보유한 포천시가 2010년 4월 남자 실업팀을 창단했다.

2017년엔 오스트리아 바이애슬론 월드컵에서 경기 운영시스템을 배웠다. 이 경험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선 심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오는 24일엔 포천시청 여자실업팀이 창단 된다. 창단 멤버는 예전에 힘든 상황에서 동고동락했던 선수들이다.

류 이사는 "열악한 환경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벌써 19년이 지났다. 후회 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다"며 잠시 머뭇거렸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우울증으로 고생한 부인을 이야기할 때는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잠시 크게 숨을 내쉰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포천지역 최초로 오는 9월 '2019 전국 대한바이애슬론연맹 회장배 로드사이클대회'가 열린다"고 말했다. 역시 그는 바이애슬론을 떠날 수 없는 대부였다.

/포천=이광덕 기자 kd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