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훈 경기본사 사회부장


지난해 4월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 후 발표한 선언문엔 남북관계 개선, 전쟁위험 해소, 비핵화를 포함한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을 주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른바 '판문점 선언'이다. 판문점 선언 이후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며 대다수의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또 개성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 3년만의 이산가족 상봉, 체육·역사·문화 분야 남북교류 등도 활발히 추진됐다.

당연히 경기도 내 각 지방정부에서도 남북교류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실제 고양·수원·성남·용인·연천·파주·광명·동두천·부천·시흥·안산·안성·안양·여주·의정부·이천·평택·포천 등 18곳이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의 핵심은 문화, 관광, 체육 등 각종 남북 교류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단절된 공동체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평화통일에 기여하자는 의미다. 또 교류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조항까지 마련했다.

사실 그동안 남북교류사업은 통일부 등 중앙정부나 민간단체의 몫이었다. 지방정부는 남북교류사업에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 판문점 선언 이후 평화의 물결이 일면서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지방정부에서부터 시작된 교류가 향후 분단의 벽을 넘을 수 있는 동력을 만들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문제는 현행법상 지방정부는 교류사업의 추진 주체로 인정할 근거가 미약하다는 데 있다. 행동에 제약이 걸린다는 점이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을 보면 지자체가 남북교류를 위해서는 사전에 통일부의 방문승인과 접촉신고 등을 허가받아야 한다. 또 허가를 받아도 지자체에서 반입, 반출하는 물품은 통일부가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지방정부가 독자적으로 해외 국가와 결연을 맺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지방정부는 남북교류사업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셈이다. 이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지방자치단체의 남북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방안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지자체 남북교류사업에 대한 법적·제도적 근거가 미흡해 지속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거론됐다.

발제자로 나선 김동성 경기연구원 북부센터장은 "남북교류협력사업에서 지자체의 역할을 늘려야 한다. 지자체가 중앙정부보다 유연한 만큼, 지금처럼 경색된 북미관계 속에서도 비정치적·비군사적 분야에서 북한과의 상호교류협력을 이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몇개의 실례를 들어보면 인천·경기·강원 지역은 민간차원에서 지난 2008년부터 4년간 말라리아 남북공동방역사업을 진행했지만 남북교류사업에 대한 법적·제도적 근거가 미흡해 지속성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수원시(2011년 조례 제정)도 5월초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인 '2019년 대한민국 청소년박람회'에 북한 청소년을 초청하기로 했으나 북측과의 대화 단절로 계획단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수원시는 지난해 1월 남북교류협력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사업 추진을 위한 기틀을 공고히 다진 지자체다. 성남시는 올해 열기로 한 가극 '금강' 평양공연를 잠정 중단했고, 용인시가 계획한 남북유소년축구 친선경기도 멈춰 있는 상태다.

남북교류사업을 가장 활발히 추진한 접경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연천군은 올해 지역 내 대북지원 양묘장(9500㎡ 규모)에서 재배한 소나무와 자작나무 2만5000그루를 북한 산림복구에 지원하려 했으나 사업기한을 넘겨 사실상 무산됐다. 파주시도 올해 계획한 임진강 사천 일대 농경지 피해 남·북 합동조사를 벌이지 못했고, 고양시의 남북예술단 합동공연 및 정기교류전도 계획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접경지역의 한 관계자는 사업을 추진하려해도 지자체를 주체로 인정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민간단체에 의존해 북한과 접촉하면서 사업을 벌이고 있어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현재 통일부도 지방정부를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주체로 명시하는 법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빨리 법 개정이 이뤄져 제2의 판문점 선언 때는 지방정부도 남북교류사업의 주체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