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호 


돈암동 시장 어귀
매일 아침 파를 다듬는
할머니가 길모퉁이에 있었다 일 년 내내
고개를 들지도 않고
파를 다듬는 할머니는
오직 파를 다듬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매일 아침
채소 가게 어귀에 나와 앉아
머리가 하얀
파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한 번도 고개를 들어 행인을 보지 않고
언제나 구부린 자세로
파를 다듬기만 하던 할머니가
어느 날,
꽃샘바람 지나가는
시장 어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 다듬은 파처럼 단정하게 머리칼을
흙 묻은 손으로 끌어 올리는
파 할머니 얼굴에서 흘낏
돌처럼 강인한
우리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한 가지 일념이 하늘에 닿으면 백 가지 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돈암동 시장 어귀에서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을 하루같이 파를 다듬고 계시는 할머니의 일념은 우리가 매일 새벽, 절이나 교회의 마룻바닥에 엎드려 올리는 어떤 기도보다 더 간절한 통성의 기도일 것이다. 우리들 어머니의 얼굴을 하고 매일 파를 다듬으시며 할머니가 올리는 기도 속에는 자식들이 세상에 나아가 별일 없이 다복하게 살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소망도 있으리라. 당신께서 잘 다듬어 놓은 파가 우리들 식탁 위에서 일용할 양식이 되듯이 당신에게도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셨으면 좋겠네.

/주병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