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발견] 반백년 농업의 달인 조팽기
[장인의 발견] 반백년 농업의 달인 조팽기
  • 박혜림
  • 승인 2019.0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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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째 꼬박꼬박 쓴 농사일기, 미래 먹거리 거름으로
▲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농사일을 놓지 못하는 조팽기 장인의 얼굴이 검게 그을렸다.

 

▲ 농사일기를 쓰기 위해 장인이 직접 만든 날씨 기호.

 

 

▲ 짚풀문화공예품 공모전 출품작 '도래멍석'

 

▲ 짚풀문화공예품 공모전 출품작 '기차멍석'

 

▲ 짚풀문화공예품 공모전 출품작 '상여'

 

▲ 짚풀문화공예품 공모전 출품작 '멍석 태극기'

 

직접 만든 기호로 날씨는 물론
그날그날 농작물 상태까지 적어

'농작법 역사' 후손에 기증하기로
휴농기엔 볏짚으로 공예품 제작도




5월 농사철을 맞아 농촌은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올해도 풍작을 기대하며 농부들은 새벽부터 들로 밭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정성으로 가꾼 농작물을 수확해본 기쁨을 누려본 사람이라면 농사가 얼마나 값진 일인지 체험해 봤을 것이다. 수십년간 농사일의 값진 체험을 기록으로 남긴 이가 있다.
56년간 흙과 함께 살며 1만여 시간 동안 농사일기를 써 온 조팽기(85) 장인이 주인공이다. 죽은 벼도 다시 살린다는 신의 손 조팽기 장인을 14일 만났다.

#1만여 시간의 농사일기

햇볕에 검게 그을린 피부가 영락없는 농부의 자태다.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조팽기 장인은 새벽이면 어김없이 밭으로 향한다. 그가 하루 일과를 마무리 지을 때 빼놓지 않고 반드시 하는 일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그날의 작물 성장 과정을 기록해두는 일. 1984년에 처음 쓰기 시작한 농사일기가 벌써 36년째 접어들었다. 그가 써온 일기장만 해도 해마다 한권씩 35여권에 이른다. 일기장 빼곡히 그날의 날씨는 물론, 해가 뜨고 지는 시간, 농작물의 성장 속도, 상태 등이 상세히 적혀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농사일기를 쓰고 있어요. 일기를 쓰지 않으면 허전한 것이 영 불편하더라고. 앞으로 4년만 더 쓰면 40년 동안 일기를 쓴 것이 되지요. 손도 떨리고 눈도 침침한 것이 얼마나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조 장인은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의 권유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49살 되던 해 원예를 해오던 친구가 전해준 원예 도서에는 하루하루 작물의 상태 기록란이 있었고 여기에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이 올해로 서른 여섯 해가 됐다.

"친구 놈이 시내에 다녀오고는 책 한권을 주고 가더라고요. 보니깐 칸칸마다 중요 메모를 적게끔 되어 있었는데 기록하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정자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일기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농사에 가장 중요한 기록이기도 한 '날씨'였다. 조 장인이 직접 고안해 낸 날씨 기호는 한눈에 그날의 날씨를 가늠할 수 있도록 짜여 있다.

"기호를 직접 만들었어요. 비가 오면 비를 그리고 번개가 쳤으면 번개를 그려서 알기 쉽게 표시해 뒀습니다. 나중 이 날씨 기록이 농사의 길흉을 판가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됐지요. 농사일기를 보고 지금도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소작농에서 대농으로

일제 해방과 6·25 전쟁 등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조 장인의 삶은 대부분 농사일이다. 파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전쟁이 발발한 뒤 피난을 떠났다가 29살이 되던 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수완이 좋았던 덕분인지 몇 마지기에 불과했던 논은 1만평까지 확장돼 대농으로 성장했다.

"말도 못 하게 큰 농사를 지었지요. 농토가 임진강 주변으로 있었는데 9000평에는 벼농사를 짓고 나머지 1000평 정도엔 밭을 일궜습니다. 워낙에 땅이 크다 보니 사람 쓰는 일도 보통 일은 아니었지요. 한번은 집에 세 들어 살던 육군 소령에게 농사일을 거들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는데 부대 군인 수십 명을 데리고 왔더라고요. 먹을 것이 워낙 귀하던 시대였는데 일꾼들 밥 해먹이려 사놓은 식자재를 몽땅 도둑 맞았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건넛마을에서 강을 건너와 훔쳐 갔더라고요. 지금은 웃지만 그때는 어찌나 속상하던지 말도 못합니다. 그래도 그때 지은 쌀로 내 자식 새끼들 남부럽지 않게 키웠습니다."

60년 가까이 농부로 살아온 그가 가장 깐깐하게 살펴보는 것 가운데 하나는 볍씨를 고르는 일이다. 우수한 볍씨로 기른 벼가 좋은 밥맛을 낸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신념이다.

"볍씨가 좋아야 좋은 밥맛이 납니다. 예전에는 최고로 쳐 주는 것이 북해도 3호라는 일본 볍씨인데 이것을 한국에서 구하기가 어려워 농림부 장관한테 투서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면장을 통해 북해도 볍씨를 받았지요."

조 장인은 주로 벼농사를 짓고 그 외에는 더덕이며, 도라지며, 팥, 감자, 깨, 파 등등 작물이란 작물은 모르는 게 없을 만큼 다양한 농사를 지어왔다. 그때마다 농사일기를 빠지지 않고 기록해뒀다.

"안 지어본 농사가 없습니다. 지금은 1000평대 정도 농사를 짓고 있지만 이것도 자식 놈들이 못하게 하더라고요. 한동안 몸이 안 좋아 병원 신세를 지는데 일기를 못 쓴 게 마음에 걸려 병상일지를 받아와서 나머지 못 쓴 일기를 마저 채워 쓰고 있습니다. 자식들이 이젠 좀 쉬라고 아우성입니다."

#농사의 산 역사 후대에 전달

자녀를 모두 출가 시킨 뒤, 농사밖에 모르던 조 장인에겐 특별한 취미가 생겼다. 한해 농사를 마치고 휴농기가 찾아오면 그때부터 수확하고 남은 볏짚으로 소소한 공예품들을 만들어 오고 있다.

"한 20년 됐나? 친구 놈이 볏짚 남은 것으로 복조리, 소쿠리 등을 만들어 오더라고요. 그걸 여기 파주문화원에 짚풀 공예품 공모전 작품으로 출품해 단번에 대상을 타왔습니다. 나도 공모전에 내 볼 요량으로 공예품을 만들어 내봤어요."

조 장인은 짚풀 공예에도 농사일만큼 남다른 재주를 발휘했다. 2002년 파주문화원 짚풀 문화 공예품 공모전에 첫 출품한 작품으로 은상을 수상했다.

"한반도 지도 위에 남과 북을 잇는 기차길을 새겨 넣은 멍석을 내놨습니다. 통일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멍석이었는데 그때 은상을 받았지요. 그 뒤에도 매년 작품을 내서 은상만 4번 받았습니다. 대상을 아직 못 받아 본 게 아쉽긴 하네요."

농사일기부터 짚풀 공예까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끊임없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조팽기 장인에겐 또 다른 꿈이 있다.

"40년간의 농사일기에 기록된 날씨와 농작법이 농사를 연구하는데 쓰이도록 하고 싶습니다. 죽을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데 후손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농사의 산 역사로 기록해온 농사일기를 기증하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농사일기가 미래세대들의 먹거리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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