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
[새책]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
  • 여승철
  • 승인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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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60년 사느라 고생했어"
식물해설가, 자신 위한 산문집 발간
'준비없이 맞은 노후' '품격있는 삶 성찰'
공감 부르는 짧은 글 100편 수록
▲ 정충화 지음, 벼리커뮤니케이션, 341쪽, 1만4000원.

"삶은 늘 위태롭다. 언제 꺼져 내릴지 모르는 박빙 위를 걷듯 말이다."(93쪽)

그렇게 살아온 60년 세월에서 그가 건져 올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시인이자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식물해설가로 일하고 있는 정충화 작가의 산문집이다. 올해 환갑을 맞은 지은이는 여는말에서 '내 인생의 중반부를 마무리'하며 '예순한 해 동안 사느라 애쓴 나를 위한 작은 위로의 표식으로 삼'고자 이 책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책은 2011년부터 충주에서 시작한 자취생활의 기록, 삶과 세상에 대한 시선, 식물해설가로서 자연생태계에 대한 관점 등 100편을 수록했다. 준비 없는 노후를 맞은 처지를 걱정하면서도 품격 있는 삶을 놓지 않으려는 작가의 성찰이 공감을 일으킨다. 가르치려 하지 않고, 담담하게 정년을 앞둔 50대 후반의 삶과 생각을 기록했다. 길지 않은 글들이지만 공감의 여운은 길다.

"나도 '개저씨'인가? 우선 나부터 내 안의 권위주의적인 생각을 모두 떨쳐내고 공감 능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이려 한다. 나 자신도 볼품없으면서 남을 얕잡아 본다는 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이겠는가?"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관계이다. 지은이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물과의 유기적 네트워크를 토대로 호혜적, 상호 의존적 관계를 형성해야만 한다"며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은 관계의 그물망을 벗어나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의존적 존재라서 그렇다"고 강조한다.

지은이는 '내가 누리는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여행, 걷기, 식물과의 만남, 벗과의 술, 책 읽기를 들며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품격 있는 삶의 훌륭한 방편이라 주장한다. 품격 있는 나이듦에 대한 철학인 셈이다.

"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니고 한 모금의 차, 한 잔의 술, 한 곡의 노래, 한 줄의 글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결국 삶의 품격은 외부가 아닌 자기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삶이 물질의 종속변수만은 아니라는 사실, 삶의 만족도는 물질적 풍요와 반드시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위로가 되는 아침이다."(139쪽)

지은이는 삼십여년 전부터 길을 걷기 시작했다. 휴일마다 들로 산으로 쏘다니며 곳곳에서 만난 나무와 들풀, 산과 강과 온갖 사물들, 낯선 사람들과의 짧은 만남에서 삶의 의미를 하나씩 깨달았고 사색과 성찰을 통해 자신의 안뜰에 정서적 자양분을 채워왔다. 길과 식물, 사물과 사람이 곧 그의 스승이었다. 그는 이십년 전부터 신문과 잡지, 인터넷 매체에 꾸준히 식물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08년 계간 <작가들> 추천으로 문단에 나온 뒤 시집 <누군가의 배후>, 시화집 <환몽>이 있다. 2010년 제7회 부천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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