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역사 속 '성지'의 부활 축복하며

 

▲ 지난 4월21일 배다리 우각로 도로부지 앞에서 열린 부활절 예배 모습.


우각로 중~동구 관통도로 개설을 위한 육교 난간에 '동구의 배다리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낼 인천의 역사입니다'라는 큰 글자 위에는 '어린 영친왕이 일본으로 가지 않겠다고 울었다는 소식은 한 달이 넘도록 조선인촌 동구에는 울음의 곡이 끊이지 않았다'는 글이 있다.

얼마 전 창영학교에서 3·1 운동에 관한 포럼이 있었는데, 1919년 만세 사건이 기독교 감리회가 동조하지 않아 학생들과 장사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세운동이 한달이 넘게 전개 되었다는 사실로 시민 자의식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이어서 오늘날 더욱 의미를 가진다.

배다리 역사문화 마을 주민과 함께하는 2019년 부활절 인천 연합예배 소식과 배다리에 들어서는 부활절 성찬을 환영하는 배다리 사람들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번 부활절 예배를 준비한 교회들은 작은 교회들이었다. 교인들이 많아 교인들의 눈치를 보느라 예수의 진한 피를 전할 수 없는 교회들이 아니라 예수의 사랑은 성도의 몸에 담겨져 흘러간다는 사실을 몸으로 실천하는 교회들의 성찬이었다. 우리 애국가에는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문구가 있다. 그 시대 교회를 안 나간다 해도 의식이 있는 우리사람들이라면 어찌 하나님을 부르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성물(각 단체의 후원금과 작은 교회 교인들이 일 년 내내 모은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저금통 헌금으로 삼백명이 넘게 설렁탕과 생활품을 나누고도 배다리위원회에 95만원을 후원했다)과 성도들의 부활 성찬은 교육과 선교로 개척자적 정신이 서슬 되어가던 120년 역사속 삶의 성지에 부활을 축복하는 성찬이었다.

몇 해 전 천일사가 아벨서점 옆에 있을 때, 책방 앞에서 70대 남자분과 눈이 마주쳤다. 초면에 인사말도 지나쳐 추억으로 일렁이는 눈빛으로 천일사 간판을 보며 대뜸 말을 붙인다. "천일사가 저 건너 파출소 옆에 있었는데." "그랬죠, 오랜만에 오셨네요?" "창영동에서 살다가 주안으로 이사해서 아직 집은 있는데 제주도에서 농장을 하다 보니 올 길이 없었는데 방송보고 일부러 왔어요."

막상 와서 천일사 간판을 보니 가슴이 울렁거리는 게 감회가 새롭다고 말하는 그 표정에 감전되어 나도 소리가 높아지고 길손은 "이 거리가 가게들이 꽉 들어서서 활기차고 창영학교 가는 길, 문화극장 앞길 모두 번화하게 들썩했었죠, 그 기운이 살아나네요." 마음 안에 숨어있는 기억을 찾아 훅하고 피어오르는 청춘의 오로라가 번진다.

눈빛이 그리움으로 들어서는 책방 손님들, 운전기사를 대동해 지팡이에 겨우 몸을 지탱하며 들어서는 점잖은 노신사, 회한에 젖은 눈길로 책방을 조용히 둘러보시더니 가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김형석 에세이 있어요?"라고 묻는다. "아! 네 있습니다." 수필집 코너에 있는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찾아드리니 반가운 표정에 책을 잡는 손길이 정겹다.

프랑스, 독일, 미국, 칠레, 중국, 태국 등 이민 간 사람들뿐 아니라 국내 곳곳에서 20년, 30년, 40년 전의 추억에 겨워 평안하게 젖어드는 눈빛들이 배다리로 들어선다.

다가 온 삶의 명제를 안고 최선을 다해 살아온 중후한 은발의 여행자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명제에서 잃었던 자신을 찾아 배다리에 와서 옛 사건 속에서 깊은 숨이 끌어올려지는 오늘, 마음과 몸이 젖어드는, 그들의 삶의 깊이에 따른 강도가 있을 뿐.

부활절 행사 앞에 펼쳐진 도로부지 생태 공원! 누군가 좋아할 것을 바라보며 갓씨를 뿌렸다는 주민, 땅은 세월과 함께 씨를 품어 싹을 내고 꽃을 피우고 다시 씨를 낸다고 말한다. 노란 갓 꽃과 연록의 보리가 빨간 양귀비와 어울려 김연아의 피겨처럼 배다리에 곡선을 뿌린다.

/곽현숙 아벨서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