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의 그늘, 공간 위에 드리우다
▲ 인천시 중구 송학동1가 현 자유공원 전경. /인천일보 DB

만국공원이냐 자유공원이냐, 혹은 복원이냐 유지냐. 역사적 공간 앞에 우린 끊임없이 질문하고 행동한다. 내항 1·8부두가 항구의 기능을 잃은 요즘, 이 곳은 어떤 공간으로 유지하고 가꿀 것이냐는 물음에서 한참을 고민 끝에 답을 내놨다. 그리고 주변 공간에 대해서도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을 겪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 대표적인 게 자유공원이다.

자유공원의 역사적 의의와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볼 때다. 최근 인천문화재단 역사문화센터는 자유공원을 중심으로 '도시 과거의 선별과 경관 관리'라는 주제의 발표를 벌였다. 자유공원의 의미와 성격, 자유공원을 둘러싼 여러 갈등 등을 끄집어 냄으로써 자유공원이 문화인류학·역사학·지리학적 관점에서 누구를 위한 공원이 돼야 할 것인지를 논의했다.

 

▲ 만국공원 시절 옛 세창양행 사택.
▲ 만국공원 시절 옛 세창양행 사택.

 

1888년 한국 최초 서구식 공원으로 조성
1919년 한성정부 13도 대표자 대회 열려

▲만국공원
자유공원의 옛 이름, 만국공원은 언제, 그리고 왜 생겼을까.
신성희 고려대 미래국토연구소 연구위원이 지난 2006년 인천연구원에 몸담을 때 발표한 '도시정체성 형성을 위한 '과거'의 선택적 복원 과정, 인천시의 만국공원(현 자유공원) 복원론을 사례로'라는 논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신 연구위원에 따르면 만국공원(각국공원)은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파고다 공원에 앞서 만들어졌다. 또 미적 가치를 가진 다양한 서구식 건축물이 존재했고 한국전쟁 때 소실될 때까지 인천의 랜드마크로 기능했다.

만국공원은 탄생 전 역사적 배경이 중요하다.

인천항의 조계(租界)는 1883년 9월20일 일본과 조인됐다. 조계란 외국인의 거주와 통상을 위해 일정한 토지를 영구 임대해 자치 관리하는 치외법권적 특수지역으로 일본에 이어 청나라,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등 각 나라와도 차례로 수호통상조약이 조인됐다. 인천항에는 일본인 전용 조계를 중심으로 서측에 청국인 전용 조계, 동측과 북측에 미국과 유럽인의 공동조계가 설정됐다. 그런데 중국이나 일본의 조계가 여러 나라가 함께 사용하는 공동조계적 성격이 강한 반면, 조선에 설정된 조계는 일본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하는 전관조계로 설정됐고, 1914년 조계제도는 폐지됐다.

일본, 청, 미국, 독일, 영국, 러시아 등에 의해 공동 조성된 각국 조계지는 1884년 10월 체결된 조약에 의해 현재의 북성동, 송학동, 관동 일대 약 44만㎡(14만평)이다.

각국 공동조계 안에 각국공원(만국공원)이 1884년 각국 외교 사절들의 협정에 의해 공공공원(public garden)으로 지정돼 1888년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각국공원이 조성됐다.

일본은 이러한 서양인 공원에 대응해 1890년 지금의 인천여상 부지를 매입, 일본인 전용공원을 설치해 동공원이라고 했다. 일제는 1914년 만국공원을 서공원으로 개칭했다.

해방 후 만국공원으로 불리던 이 곳은 1957년 맥아더 장군 동상이 세워진 후 지금껏 자유공원으로 불리고 있다. 불리는 이름에 따라 공원 성격 또한 바뀐 것은 자명하다.
자유공원을 기억하는 학자와 관계자들은 이름을 통한 성격의 변화를 주목하며 '자유공원 명칭'을 통한 재검토의 필요성을 주목하고 있다.
1919년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올해 기억해야 할 만국공원에서의 역사적 진실은 한성정부 13도 대표자 대회가 이 곳에서 열렸다는 점이다. 그런데 왜 이곳에서 열리게 됐는지는 여전히 학계 발표가 띄엄띄엄하다.
 

▲ 자유공원 내 맥아더 장군 동상.
▲ 자유공원 내 맥아더 장군 동상.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이전 부정적
만국공원 복원 문화엘리트층 주도 한계

▲자유공원
우리는 만국공원 논의에 앞서 개항을 고민해야 한다. 개항은 '외세에 의해 강요된 개항'이라는 측면과 '새로운 문물의 도입과 국제적 문화의 발흥'이라는 양면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자유공원을 '식민도시'라는 부정적 평가에서 '한국근대문화의 국내발신지'로 나뉜다.

이 때문에 인천이 개항 이전을 잃었던 점을 안타까워한다. 그렇기에 자유공원을 만국공원으로 복원하는 문제는 복잡하다. 만국공원이 갖는 일제시기 이전의 반짝 개항기만을 염두하자는 것도 무리다.
십수 년 전 실시된 '각국공원 복원에 관한 시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복원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명칭 변경에는 과반수 이상이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또 자유공원의 현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이전 등에는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이 이전되지 못하면 이 곳에 있었던 인천각(존스톤 별장) 복원은 의미가 퇴색된다.
이를 근거로 신 연구위원은 "만국공원 복원 담론은 시민운동이나 지역운동의 차원에서 논의된 게 아니라 지역의 문화엘리트계층이 주도한 비판적 문화담론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만국공원 복원에는 찬성하지만 자유공원 해체 혹은 변화에 반대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기억 속에 축적된 경험, 맥아더 동상이 오랜 동안 일상적 경관이 된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신 연구위원은 "만국공원 복원론은 역사적 맥락을 장소화하는 전략으로서 장소의 의미는 절대적으로 주어지는(pre-given)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구성되는(constructed) 것을 함축한다"고 언급했다.

이영민 이화여대 교수는 "무엇을 왜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이루어졌을 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고,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온 화석화된 경관이 아닌 현재와도 이어지는 우리들의 삶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과거의 복원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삶에도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개항 전 제물포의 한가했던 옛 모습, 그리고 존스턴 별장·세창양행 사택이 있던 개항기, 13도 대표자대회를 열었던 일제강점기,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과 맥아더 장군 동상을 건립한 한국전쟁 이후의 모든 기억이 모여 지금의 자유공원이 조성됐다. 지금 우리에게 자유공원은 어떤 의미일까.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