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지난 달 경기도 시·군의 청년 업무 담당자들이 곤욕을 치렀다. 올해 처음 시행하는 청년기본소득(청년배당)을 놓고 문의와 원망이 폭주해서다. 경기도 청년배당은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 청년들에게 100만원을 안겨주는 한정적 기본소득제다. 부잣집 아들이거나 반지하 전세 사는 집 딸이거나 가리지 않는다. "왜 하필 올해부터냐. 작년에는 안 하고" "기준을 왜 이따위로 만들었냐" 민원과의 '전쟁'에 지친 한 담당자의 소회(인천일보 4월25일자 1면)가 눈길을 끈다. "잔뜩 기대를 걸었던 청년들이 너무 실망하는 걸 보는 게 더 힘듭니다." 못난 어른들을 만나 일본청년들에 비해서도 너무 힘들어 하는 우리 청년들의 슬픈 얼굴이 눈에 선하다.

▶여세를 몰아 경기도는 지난 달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까지 열었다. 주제는 '기본소득, 대동세상(大同世上)의 문을 열다'이다. 국제콘퍼런스에는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 설립자인 애니 밀러 등 세계적 기본소득 고수들이 운집했다. 기본소득제의 이론적 기반인 공동부(共同富)라는 개념도 소개됐다. '왜 부자에게까지 지원하느냐'는 인식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역시 이재명 지사는 보편적 복지 만큼은 저만치 앞서가는 내공이 드러나는 자리였다.
▶기본소득제는 2016년 스위스가 세계 최초로 국민투표에 부치면서 널리 알려졌다. 기존의 모든 복지를 없애는 대신 전 국민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285만원)을 지급하는 안이었다. 결과는 부결이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역시 국민 수준이 높다'느니 등의 논평이 나왔다. 본래 의미의 기본소득은 자산을 조사하거나 근로 요구를 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 모든 개인에게 조건없이 주기적으로 동일 액수의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정부가 적극 나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기존 복지제도와는 취지가 다르다.
▶그럼에도 기본소득제는 벌써 우리 가까이 다가와 있다. 전남 해남군은 6월부터 1만5000가구의 농가들에 연간 각 60만원씩의 농민수당을 지급한다. 대농 소농을 가리지 않으니 기본소득이다. 농민수당은 현재 전국 54곳에서 시행 또는 준비 중이라고 한다. 기존 복지제도는 너무 복잡해지고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고용장려금을 노려 유령직원을 만드는 등 '복지 파이프'가 줄줄 새기 때문이다. 마치 지하 송유관을 뚫어 기름을 훔치는 꼴이다. 아동수당은 작년에 소득 하위 90%만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그런데 그 10%를 가려내기 위한 비용이 아예 다 주는 것 보다 컸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런 저런 복지 다 없애면 전 가구에 월 150만원 정도를 온라인으로 쏘아 줄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