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 수원시청년지원센터장

 

우리 사회는 청년의 자립과 성장을 위해 다양한 정책과 담론이 활발히 형성되어 청년의 삶에 더 다가가고 있다.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기초지방자치단체는 청년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청년들의 사회진입을 위해 취업과 창업을 위한 새로운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통비와 생활비 그리고 주거, 반값 등록금, 단기 일자리 지원 등 청년을 지원하는 예산과 인력이 적지 않다. 그러나 비경제활동 청년 인구는 증가하고 기업은 청년근로자를 필요로 한다. 일자리 미스매칭이다. 청년 일자리 미스매칭에는 저임금과 복리후생에 대한 미비만 이유가 되지 않는다. 청년 근로자들은 기업의 필요에만 자신들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근로를 통해 성장하기를 원한다. 청년 근로자들이 일 하고 싶은 근로환경은 개인의 개성을 존중받고, 톱 다운의 의사결정 방식이 아닌 좋은 논쟁이 가능한 기업이다. 조직문화에 혁신이 필요하다.

기존의 경직되고 보수적인 상하관계가 분명한 근로환경은 청년 근로자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리는 것뿐만 아니라 자율성을 존중받지 못하는 조직문화는 청년근로자에게서 신뢰와 참여를 얻지 못하며 만약 바뀌지 않는 사회를 지속적으로 경험한다면 삶의 가치관이나 존재의 역할에 대한 불신과 불안으로 사회는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청년을 위한 정책이 성과를 거둘 수 있으려면 청년이 일하는 환경에 변화가 함께 이어져야 한다.

취업 준비를 하던 한 청년이 취업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재취업 준비를 한다고 해서 퇴사를 결정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결국 원인은 사람, 그리고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 때문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일을 하면서 피로감을 느끼는 주된 원인은 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간 갈등으로 비롯된다. 성과와 승진에 매달린 몰지각한 상사, 절대로 손해 보지 않으려는 동료, 깊은 갈등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유지돼야 하는 거짓 관계들, 발언권이 없는 자신의 지위 등이다. 하루 일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매일 보는 동료들 간에 동료애가 없고, 능력 보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동료가 인정받는 조직에는 정 붙이기 힘든 것이다.

한국은 전통적인 관계중심 사회였다. 그러다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성취를 위해 목적 중심의 관계를 형성해 가며 자기번영을 위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성과가 있는 일이면 협력하고, 문제가 생기면 발을 빼는 이중적이고 책임감 없는 조직 관리자들의 태도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며 사회에 진입한 청년들의 정의 의지를 가지치기 하는 것이다. 청년들은 이중적인 모습을 피곤해하며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다. 혼놀(혼자 놀기), 솔플(솔로 플레이), 자발적 아싸(자발적 아웃싸이더), 혼강(혼자 강의 듣기)은 혼자 시간을 보내는 청춘들을 지칭한다. 조직에 충성하지 않고 회식을 원하지 않는 요즘 청년들의 태도는 사회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거짓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시간, 감정 등 정신적 비용을 쓰기 싫어서다.

청년들은 진정한 관계 맺기가 아니라면 자신과 더 가까워지기 위한 시간을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청년아 나를 딛고 오르거라."라고 했던 노신 만큼은 아닐지라도 우리 기성세대가 미래의 대안인 청년의 자립과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시작은 우리안의 모순과 오류를 먼저 극복하는 일이다. 말로만 나라 걱정을 하지 말고, 나라가 걱정이 된다면 청년에게 미루지 말고,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더는 불가능한 사회가 아닌 동등한 권리와 기회가 균등하고 공정한 사회에서 노력하는 청년들에게 가능성이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면 된다. 사회적으로 존재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사회의 부조리한 상황들을 각자의 자리에서 뿌리를 뽑아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피해 볼까 봐 모른 척 하고, 이득을 위해서는 달려드는 뻔뻔한 것은 그만 보여줘라.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올바른 역할을 하는 본보기가 되어주어야 한다.

바늘구멍만한 취업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청년들은 오늘도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가고 있다. 친구 만나기, 여행가기, 취미생활 등 모든 여가생활은 취업 이후로 미뤄져 있을 것이다. 여유를 갖고 준비하라는 말은 통하지 않을 것이고, 그 길이 아니라도 세상에 할 일이 많으니 적당히 하라는 말도 용기가 나지 않을 것이다. 노력만큼 성과가 있기를 바라고 혹시라도 원했던 결과가 주어지지 않아도 누구도 쉽게 사는 삶이 없으니 오래 혼란스러워하지 말고 원하는 것에 다시 도전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사회와 사람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우선되는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내기를 바란다.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면 어떤 고난에도 길을 잃지 않을 것이며, 주변에 따뜻함을 실천하는 것이 본보기가 되어 줄 때 우리 삶은 평화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