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바람은 넘실 천(千) 이랑 만(萬) 이랑
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여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빛 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 밤 너 어디로 가 버리련?


오월은 해마다 돌아오지만 늘 같은 오월이 아니다. 어느 해 오월은 이별이 있었고, 어느 해 오월은 항쟁이 있었고, 어느 해 오월은 사랑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오월인 듯 감춰뒀던 연애를 꿈꾸고, 새는 날고, 꽃들은 만발하게 피어난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손을 잡고 쏘다니고 노인들은 주름을 펴고 환한 잇몸 드러내고 웃는다.
그래서 해마다 새로 태어나는 오월은 아기처럼 어여쁘다. 어떤 시인도 이런 오월을 완벽하게 그려내진 못했다. 수많은 시 중 김영랑의 '오월'은 오월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 압권이다.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이 시를 읽으면 푸르른 들길, 부드러운 햇살,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의 품속에 저절로 안겨있게 된다.
그러나 인간과 오월은 태생적으로 운명을 달리한다. 오월은 영원히 같은 모습으로 환생하나, 인간은 해마다 늙어 내년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다. 슬프게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단지 지금 이 아름답고 청명한 오월이 있을 뿐.
아직도 늦지 않았다. 올해는 올해의 오월이 있고, 내년엔 내년의 오월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지금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얇은 단장한 새색시 같이 고운 오월의 품에 한번 안겨보는 것이 어떨는지?

/권영준 시인·인천부개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