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 서울대 예술과학센터 선임연구원

음대 생활은 모든 것이 신기하고 정겨운 것들이어서 마치 구름을 밟고 떠다니는 것 같았다. 그 중 최고의 기쁨은 기악과의 오케스트라 수업을 청강하는 것이었다. 100여명의 학생들이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과 바그너의 오페라 서곡을 연습했다. 웅장한 곡이 울려 퍼지고, 연주에 몰입하는 학생들의 진지한 표정과 몸짓 그리고 지휘 교수님의 연주를 독려하는 다양한 주문이 이어졌다. 그 아름답고 활기찬 소리는 평소에 음반으로 들었던 연주와는 비교가 되지 못할 정도였다. 첫 수업, 모두 처음 읽는 악보라서 한 악장을 연주하는 데 거의 30분이나 소요되었지만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 듯했다.
오케스트라의 여러 악기 소리를 그렇게 섬세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던 기억이 난다.

처음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었던 것은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나선 연주회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함께 연주하는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였다.
아버지는 청년 시절 교회 찬양대에서 활동해 메시아의 합창곡 대부분을 외우고 있었고, 그날도 연주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메시아에 대해 말씀했다. 음악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이라기보다는 당신의 느낌과 감동을 독백처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린 나에게도 그 감동이 그대로 전해진 듯했다. 아마도 그러한 감동이 내가 성장하여 음악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지금도 아버지의 오케스트라 연주회 선물을 감사하게 간직하고 있다.

지난 10년 전부터 정부의 지원으로 초등학교와 지역 단위로 많은 학생 오케스트라가 육성됐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대략 300여개 정도의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 오케스트라 교육에 있어서 몇 가지 개선해야 할 사안도 있다.
첫째, 같은 악기 또는 다른 악기와 같이 연주하는 앙상블 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단순히 악보를 따라 소리를 맞추는 형태로 연습하는 실정이다. 오케스트라의 교육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고 재미있는 점은 앙상블이다.
좋은 앙상블을 하기 위해선 우선 소리를 들어야 한다. 내가 지금 어떤 소리를 내고 있고, 같이 연주하는 동료는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지 서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연주를 하고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 앙상블이다. 이러한 앙상블의 즐거움은 오케스트라 연주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둘째, 오케스트라는 아주 합리적이며 민주적인 조직으로 구성된다. 악장은 오케스트라 단체를 이끄는 실질적인 리더이다. 보통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리더라고 생각하지만 오케스트라를 실제 이끄는 사람은 단체를 대표하는 악장이다. 그리고 각 악기마다 수석과 부수석이 있는데 이들은 그 파트에 속한 인원을 통솔한다. 여러 파트가 서로 조화로운 앙상블을 하기 위해 개별 연습과 파트 연습을 통해서 전체 합주를 하게 된다. 오케스트라 교육은 각 파트의 의견이 모아지고, 전체의 소리가 모아지는 합리적인 의견을 만드는 교육이다. 그러나 현재 학생 오케스트라는 각 파트의 수석과 부수석은 상징적으로 존재할 뿐이며, 연습은 선생님과 지휘자에 의존하고 있어 조금은 비민주적인 형태를 보인다. 이러한 그릇된 관행으로는 성인 오케스트라가 되어도 좋은 앙상블을 만들지 못하게 된다.

셋째,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많이 들어야 한다. 기회가 될 때마다 연주회장을 찾아서 감상을 하는 것이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 감상은 소리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마음에 새기는 중요한 연습이라 할 수 있다. 연주회장보다도 실제 오케스트라 연습장을 찾아가서 연습 리허설을 볼 수 있다면 더 효과적인 교육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악 교육, 특히 오케스트라 교육은 세계인과 대화할 수 있는 언어를 배우는 것과도 같다. 모든 언어 교육이 그렇듯이 오케스트라 교육도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화음과 리듬 그리고 선율을 노래하고 연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만 준 특별한 선물이다. 돌이켜보면 살아가며 힘들 때마다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음악에서 나왔다. 감동어린 연주에 대한 기억과 감흥은 오랫동안 가슴 한편을 휘돌아 머물곤 한다. 휴식할 때마다 좋아하는 곡을 크게 틀어 듣고 있노라면 그 공간이 바로 나만의 음악당이 된다.

어버이날을 지내며 음악을 선물해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또 대한민국의 아빠들에게 권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선물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