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에 속아 … 영업인이 작성
이주민, 결제 항의·해약 요구
영업인, 교재 등 챙겨 해외로
업체, 피해 이주민 청구 중지
▲ 8일 오전 학습지 계약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수원 이주 여성들이 해당 회사의 교재, 계약서 등을 살펴보며 대화하고 있다.


최근 수원시에서 공짜라는 말에 속아 원치 않던 학습지 이용계약을 맺은 중국 이주민들이 피해를 주장하고 나섰지만, 오히려 수백만원의 위약금만 물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에 대해 해당 학습지 기업은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고, 반면 이주민 단체는 '사회공헌'을 가치로 여기는 기업의 자세가 아니라며 반발하고 있다.

8일 수원 이주민 단체 등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한국말이 서툰 중국 여성 이주민 10여명이 "사기를 당했는데 돈까지 내야 한다"는 내용의 도움을 요청해왔다.

이주민들은 모두 A사의 학습교재, 태블릿PC 등을 계약한 바 있었다.

하지만 사전에 알지도, 원하지도 않은 계약이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단체 관계자들이 사정을 살펴보니, A사 수원지역 영업인 B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이주민들에게 "아이에게 좋은 책을 무료로 준다"는 식으로 접근했다.

그러면서 B씨는 이주민들의 외국인등록번호, 주소, 은행명, 계좌번호 등을 알아냈고 고가의 상품 이용계약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서에는 계약 대상자의 서명이 필수이지만, B씨가 임의로 작성했다고 이주민들은 주장하고 있다.

수상하게 여기면 B씨가 안심시켰다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B씨의 말과 달리 통장이나 카드에서 수십만원의 결제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불안감에 통장, 카드를 정지한 이들은 A사로부터 납부안내 문자를 받았다.

이주민들은 B씨에게 즉각 항의했으나, B씨는 괜찮다는 식으로 달랬다.

이 과정에서 B씨는 일부 이주민에게 금액을 돌려주기도 했다.

그러던 3월 B씨는 이주민들에게 지급했어야 할 교재 등을 전부 챙겨 해외로 출국했다.

이주민들은 A사에 해약을 요구했고, A사는 도중 해지에 대한 위약금이 발생한다고 통보했다.

이주민 단체 조사에서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의 계약금은 5000여만원에 달하고, 위약금만 수백만원이 발생할 것으로 파악됐다.

원하지 않는 계약을 맺은 데다 물건도 못 받았는데, 위약금을 물어야하는 꼴이다.

이주민 단체는 수원서부경찰서에 B씨를 고소했고, 조만간 소비자보호원에 집단구제를 요청할 방침이다.

이주민 소모(39)씨는 "B씨가 워낙 사람 좋아 보이고, 내가 한국 사정을 몰라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며 "사전에 제대로 된 내용을 고지 받지 않았고, 서명도 가짜니 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안기희 수원 정만천하 이주여성협회 대표는 "A사 고객센터가 전화상으로 계약에 대해 확인하는 절차가 있긴 했지만, 이주민들은 한국말이 서툴러 B씨가 사전에 시켰던 대로 '네'라고만 답변하기도 했다"며 "이주민이 속았으나, 계약 시스템의 하자도 있다. 앞으로도 이 같은 피해가 일어날 수 있어 문제다"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또 "A기업이 바른 인성, 나눔 등의 가치를 내세운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A사는 추후 B씨를 경찰에 사문서 위조 및 명의대여 혐의로 고소하고, 과실이 확인되면 이주민들을 돕겠다는 입장이다.

A사 관계자는 "피해 이주민들로부터 내용을 접수받고 즉시 청구를 중지했다. B씨가 도피를 해 사측도 물건분실 등의 피해를 입었다"며 "경찰조사에서 피해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피해 최소화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