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영 인천시선관위지도담당관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캡틴 마블'은 페미니즘 관점에서 여성 영웅의 이야기를 잘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남성 주류의 세계에서 남성 주인공을 보조하거나 로맨스의 대상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 여성 캐릭터의 전형이고, 이런 전통적 시각에 저항하여 주체성과 자유를 찾는 것이 통상적인 페미니즘적 여성 캐릭터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캡틴 마블은 자유를 찾은 것을 넘어 다른 어벤저스 멤버들을 압도할만한 최강의 존재로 올라섰다. 즉 주류와 비주류가 역전된 모습을 보여줬다.
미국의 여성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대법원에 여성이 몇 명 있어야 충분하냐는 질문에 '9명 전원'이라 답했다.

단순한 기계적 평등의 논리를 뒤엎고, 메르켈 총리의 장기 집권에 익숙한 독일 청소년들은 남자가 총리가 된다면 국정 운영에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고 걱정할 정도다. 이런 미러링(mirroring) 사례는 남성이 정치를 주도한다는 전통적 인식이 뿌리 깊은 고정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모두가 성별로 후보자의 자질을 구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보편적 상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7%로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그 17%의 절반도 선거법의 '50%이상 여성후보자여야 한다'는 규정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실제 남성 후보자를 선호하는 사회적·문화적 편견은 아직도 여전하다.

의무추천 규정에 따라 많은 여성정치인이 국민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지역구 공천을 받아 경쟁을 거치고 의원직에 오르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일부 국가에서는 이런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 가져오는 선순환적 기능에 주목하여 지역구 선거에서까지 남녀 동수 추천을 의무화하는 급진적인 불평등 해소 정책을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차가 있겠지만 선거법에는 정당이 지역구 의원의 30%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최근 각 정당 공천과정에서도 여성후보자에 가산점을 주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방법이 어떻든 기울어진 운동장을 극복하고 여성정치를 활성화하는 것이 이미 우리 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과제라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언젠가 캡틴 마블처럼 어떤 남성 정치인보다 대단한 비전과 결단력을 가진 여성 정치인이 활약하게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