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경 논설위원

신록이 짙어가는 계절의 여왕 5월이다. 1년 12달 중 5월만큼 가족이나 스승과 관련된 기념일이나 행사가 많은 달도 없다. 5월 달력은 우거진 녹음만큼이나 챙겨야 할 날로 빼곡하다. 어린이날(5일)을 시작으로 어버이날(8일), 입양의날(11일), 스승의날(15일), 성년의날(20일), 부부의날(21일) 등 달력에 적힌 이날들만 잘 챙겨도 화목한 '가정의 달'이 될 듯싶다. 5월에 생일이 있다면 탄생에서 유· 아동기,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돼 가정을 꾸려 나가는 한 사람의 인생사를 5월 한장의 달력에 적힌 메모에서 다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초등학교 시절. 5월은 가장 많은 편지를 쓰는 달이었다. 5월 시작과 함께 처음으로 쓰는 편지가 부모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편지였다. 수업시간에 쓴 편지를 집주소가 적힌 편지봉투에 고이 접어 선생님께 제출해야만 집에 갈 수 있었다. 3학년 때까지 '엄마 건강하게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로 시작되던 감사의 편지가 4학년부터는 '엄마, 아빠 고맙습니다'로 앞머리가 바뀌었다. 어머니날이 어버이날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버이날이 지나면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편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스승의 날이 되면 학생들은 조금씩 돈을 모아 준비한 작은 선물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담은 손편지를 전해드리곤 했다. 평상시 호랑이같던 선생님도 이날 만큼은 훈훈한 사제지간으로 돌아가 너그러워졌던 것 같다. 학생들이 선생님에게는 물론 일반 교사가 교감·교장선생님에게 마음이 담긴 캔커피 하나 못 전하게 하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등의금지에관한법률)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요즘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내일은 어버이날이다. 어릴적 부모님께 들었던 자식 키워봐야 부모마음을 헤아릴수 있단 얘기가 시간이 갈수록 더 절실하게 와 닿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듯싶다. 차서 넘치는데도 부족할 것 같이 느끼는 부모의 자식 사랑을 이제는 알 것도 같다. 경기 침체에 취업절벽, 고용한파, 천정부지의 집값 등 좀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연애, 결혼, 출산 포기를 넘어 경력과 희망, 인간관계까지 놓아버린 20~30대 N포세대에게 자식 키워봐야 부모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단 말은 이해할 수 없는 먼 옛날 얘기로만 들릴 것이다. 멀리 계신 어머니께 안부 전화라도 해야겠다. 그리고 힘든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자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훗날 지금의 부모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는 말은 뭐가 있을지도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