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샤를르 드골(1890~1970) 프랑스 대통령의 추모 연미사는 1970년 11월12일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거행되었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장례식은 파리에서 동쪽으로 250㎞ 떨어진 꼴롬베에서 가족과 친지들만이 모여서 치러졌지만 퐁피두 대통령은 노트르담에서 세계 각국의 정상 100여명과 함께 추모 연미사를 마련했던 것이다. ▶조선일보사의 파리 특파원으로 부임한 직후였던 필자는 성당 측면에 마련된 내외신 기자 취재구역에서 장엄하게 진행되는 연미사 행사를 지켜보면서 '세계의 장송(葬送) 속에 막을 내린 영웅교향곡'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던 기억이 새롭다. '드골의 생애는 한편의 영웅교향곡이다… 이것은 영웅을 좋아하는 그가 몸소 작곡하고 몸소 지휘하고 또 몸소 환호하기도 한 파란만장한 일대기이기도 하다'고 애국자이며 권좌에서 떠날 때를 알던 드골을 유신시대의 갈등을 겪으며 살던 젊은 언론인으로서 깊은 추앙의 뜻을 담아 썼었다. ▶1345년에 완공 축성되었던 노트르담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개최된 만국박람회 때 세워진 에펠탑과 함께 세계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파리의 상징으로 쌍벽을 이루어 왔다. 우리나라가 광화문을 기점으로 전국 각지에서 수도 서울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듯 프랑스의 거리기점은 노트르담이다.▶1789년 프랑스 대혁명 때 파괴되어 방치되어있던 노트르담은 1831년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가 베스트셀러가 된 계기로 복원되었다. 성당에 보관되고 있던 예수가 썼던 가시 면류관과 못 박혔던 성십자가 조각은 루이 9세가 성당 3개를 지을 거금을 주고 콘스탄티노플에서 사왔던 것인데 화염 속에서 성직자들과 소방관들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구해냈다. 이 과정에서 지방의 중소업체에서 개발한 콜로서스라는 화재진압 로봇이 화염 속에서 분당 2500L의 물을 뿌릴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주 파리에서 불탄 노트르담을 세느강 건너편에서 하염없이 바라보며 애통해하는 프랑스인들을 보면서 뇌리에는 여러 상념들이 교차되었다. 800여년이 된 교회첨탑이 없어지고 지붕이 모두 불탄 노트르담과 2008년 방화로 전소된 국보1호 남대문이 중첩되었고, 반세기 전 드골의 연미사 광경도 생생하게 회상되었으며 친지들과 함께 성당을 자주 찾았던 추억도 되살아났다. 5년 내에 더 아름다운 성당으로 만들겠다는 마크롱 대통령의 다짐에 프랑스인들이 합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