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실 아주대 교육대학원 교수

한국의 할머니들이 춤을 춘다? 그 이야기에 뉴욕타임즈가 감동을 했다? 무슨 이야기일까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뉴욕타임즈에 '춤추는 한국의 할머니들' 이란 동영상과 사연이 소개되었다. 가난 때문에 그다지도 갈망하던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했던 '늦깎이 할머니들'이 뒤늦게나마 손주 또래 학우들과 초등학교에 입학을해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출산율 저하로 학생이 없어 폐교 위기에 처하게 된 한국의 한 시골 초등학교가 배움의 기회를 놓쳤던 만학의 고령 할머니들에게 초등학교 입학 기회를 주게 됐고, 그 덕분에 70세를 훌쩍 넘긴 할머니들이 신이 나서 덩실 덩실 교실에서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을 소개한 것이다.
문득 어릴 적 경험이 떠오른다. 당시 초등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선생님이시던 어머니 등에 매달려 시골길을 한 시간여 이상 걸어 어느 기와집 사랑방에 모여 계신 동네 어르신들에게 매일 밤 갔던 기억, 칠판에 무엇인가를 써 가며 '가갸 거겨…'를 가르치시던 어머니의 모습, 그 시간 그 장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분들이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궈 낸 희생의 아이콘이자 위대한 대한의 어머니들이 아니신가. 마치 모태신앙처럼 문해교육은 그렇게 삶의 일부분으로 일찍이 다가와 있었다. 그래서인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비문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수년간 전국을 뛰어 다니며 비문해 실태 조사와 이를 위한 교육정책 문제를 연구하는 일에 오랜 시간과 열정을 쏟았었다. 당시 도시와 달리 농촌지역의 경우 거의 50%에 달하는 많은 여성들이 읽고 쓸고 셈하는 기초 학습력이 없는, 문자로 소통되는 일상생활 영위가 어려운 상태에 있다는 조사결과가 도출되었었다. 시대는 달라졌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러나 뉴욕타임즈 기사 덕분에 우리는 다시금 2019년 현재 여전히 이 땅에는 적지 않은 '그들'이, '춤추는 한국의 할머니'로 대변되는 바로 그분 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게 된다.

일제강점기 우리는 우리의 말과 글과 배움을 송두리째 빼앗겼었다. 그 결과해방 직후 전 국민의 78.6%가 '낫놓고 기역'도 모르는 '절대 문맹국가' 이른바 '까막눈' 나라 일 수밖에 없던 우리였다. 그런 우리가 오늘날 세계적인 학습강국 코리아로 인정받으며 세계 최고의 '문해국가' 반열에 올랐다. 이를 높이 평가해 유네스코는 매년 세계적인 문해국가들에게 '유네스코 세종대왕상'을 수여한다. 필자는 무려 7년 동안 유네스코의 문해교육대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2019년 현재도 여전히 너무도 많은 곳에,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교육의 사각지대에 학습소외집단으로 남아있음을 알고 있기에, 우리가 과연 그런 상을 수여할 자격이 있는 나라인가 하는 자괴감을 자주 느끼곤 했다.

전국의 야학과 문해교육기관들이 독지가들의 손을 빌어 국민기초학습권으로서의 배울 권리, 알권리를 위한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뒤늦게나마 법제화를 통해 문해교육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으나 아직도 '사각지대 없는 모두를 위한 배움과 학습권의 보장'은 실로 요원하다. 멀리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 지금 바로 이곳에서의 우리의 교육문제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여전히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기초 수준의 절대 비문해자와 일상의 문자생활에 불편함과 어려움을 겪는 이른바 반문해자들이 무려 260여만명에 이른다는 통계를 연전의 통계치를 기억한다. 의무교육인 중학교 수준의 교육을 이수하지 못한 기초교육 필요집단 또한 500여만명에 이른다는 통계치가 '허수(虛數)'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행히도 수년전부터 국가적 차원의 평생교육을 통해 문해교육의 중요성과 국민기본권으로서의 배울 권리 알 권리를 위한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전국적으로 야학과 문해교육기관들, 시민사회단체와 복지기관들이 기초문해교육과 생활기능문해교육에 적극 동참하고 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평생교육이란 이름하에 사각지대에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을 위한 교육과 연구에 종사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뉴욕타임즈가 전한 뜻밖의 소식, '춤추는 한국의 할머니들' 기사에 감사한다. 역사적 아픔 마저도 강렬한 교육열과 배움의 희구로 승화시켜 나간 우리 민족의 '학습력'을 상기시켜 주었음에 감사한다. 할머니들의 고단했던 삶과 응축된 '배움의 한', '한(恨)' 마저도 '배움의 즐거움'으로 승화시켜 낸 위대함에도 감사한다.

할머니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살아갈 많은 날들을 '배움을 통해 신나게 춤출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할머니들의 웃음소리가 학교 담장 너머 멀리 멀리 쾌활하게 넘쳐나기를 기대한다. 세상이 전하는 이런 저런 어두운 소식들 탓인지 오늘따라 유독 '춤추는 할머니'들의 신명나는 춤사위 모습이 즐겁고 반갑다. 할머니들 덕에 얼쑤 얼쑤 덩달아 '춤추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