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묵 인천콘서트챔버 대표

국악에 대한 진가를 지나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론 이방인에 의해 우리 것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 사람보다 우리의 전통 음악을 애착한 호주 출신 재즈 드러머 사이먼 바커(Simon Barker)는 자신의 음악이 한국의 무속 음악, 농악, 판소리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우연히 접한 장구 소리를 시작으로 한국 전통 음악에 깊게 빠져들었고, 현재는 서양의 악기로 동서양 음악이 어우러지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나라 남부 동해안 일대에 전승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2-가호 '동해안 별신굿'은 주로 마을의 풍요, 다산, 번창 등을 기원하는 풍어제이자 마을굿이다. 별신굿을 행하는 동안 무속인과 마을 사람들은 함께 춤과 노래를 즐기고,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때쯤이면 마을굿은 어느새 축제가 된다. 재즈 드러머 사이먼은 축제와 같은 마을굿의 장구 소리를 우연히 접했다고 한다. 당시의 문화 충격이 작지 않았는지, 그는 한국을 방문해 장구 소리의 주인공을 만나 사사하기로 한다. 그렇게 한국의 마을굿과 인연이 닿았다.

그는 지난 1999년 무작정 한국에 입국해 장구 소리의 주인공을 찾기 위한 강행군에 들어갔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타국에서 악기 소리의 주인공을 찾기는 만만치가 않았고, 허탕을 치며 본국으로 돌아가는 수고를 반복해야만 했다.

그러나 사이먼 바커는 포기하지 않았다. 7년 동안 무려 17번을 한국을 오가며 자신이 찾던 소리의 주인공이 동해안 별신굿 예능 보유자 김석출 선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를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2005년 사이먼은 국악인 김동원의 주선으로 고대하던 김석출 선생을 만났다. 김동원은 국악 연주자이자 사물놀이를 소개하는 다양한 서적과 음악 교본들을 출간했다. 국내외에서 한국의 전통 장단, 사물놀이 등에 대해 활발하게 강의 활동을 펼치는 국악인이다. 그의 눈에 처음 비친 사이먼은 음악적 호기심이 많은 이방인으로만 보였다. 하지만 사이먼이 생각하는 한국 음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각별하다 생각되어 특별한 여정에 함께 하기로 한다. 김석출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는 소리에 대한 호기심이 아닌 한국 문화와 음악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우선이라 충고하기도 했다.

김석출 선생과 만남에 앞서 한국의 다양한 국악인을 만나는 자리를 주선하여 한국 전통음악을 알아가는 과정을 마련해 주었다. 그 중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 배일동 명창을 만나 국악과 양악을 융합한 작품을 만들어 함께 무대에 올렸다. 그들은 서로의 음악 장르가 다르고 의사전달이 서툴러도 음악에 대한 접근법과 철학이 같기에 가능한 작업이었다고 평가했다. 어느새 사이먼은 김석출 선생을 만나기 위한 정신적인 준비를 조금씩 다져갔던 셈이다.

같은 해, 사이먼은 그렇게 바라던 동해안 별신굿의 김석출 선생을 만났다. 당신의 음악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전하며, 예를 다해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김석출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무속 음악에 종사하며 살아온 이야기와 음악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타국에서 온 이방인에게 전했다. 장구의 궁편은 하늘, 채편은 땅을 상징하기에 자연과 같이 악기의 음양 조화가 좋은 음악의 전제조건이라는 이야기 또한 나눴다. 사이먼은 김석출의 연주력, 타법과 리듬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여정을 시작했었다. 하지만 그가 만난 김석출 선생의 음악은 악기를 연주하는 행위를 넘어 일종의 의식처럼 비춰졌다. 그의 음악은 여흥이 아닌 특별한 역할과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영화 같은 이야기는 실제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한국을 경험하기 전 사이먼은 자신의 연주력이 기교와 정교함은 가졌지만, 무엇인가 부족했다고 느꼈다. 그는 한국 음악의 정신을 경험한 뒤 자신의 연주력이 더욱 풍부해졌고, 나아가 생활 모든 면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그의 여정이 한국 전통 음악의 정신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그는 한국의 음악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고, 그러한 한국 문화에 부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음악 하나에도 정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의 전통 음악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온 이방인의 삶에 큰 변화를 불러오게 했다. 동해안 별신굿 예능 보유자 김석출 선생을 찾기 위해 무작정 오른 한국행, 그리고 음악적 기교를 초월해 정신이 밑바탕되어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 등은 진정한 음악을 찾는 길이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