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사라졌다 싶었던 장면들이 다시 등장했다. 국회에서 몸싸움이 또 벌어졌고 밤늦게까지 극한 대치가 며칠씩 이어지기도 했다. 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편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검경 수사권조정안을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하려고 한바탕 난장판이 계속된 것이다. 그 와중에 국회의장은 성추행으로 고발당했고, 의사진행을 가로막은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무더기로 국회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이에 맞불로 자유한국당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다른 명목으로 고발했다. 국회의원은 물론 사무처 직원까지 사무실에 감금당했고, 법안이 전자적으로 접수되기도 했다.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되면 해당 법안은 상임위원회의 심의(최장 180일), 법사위원회의 검토(최장 90일), 본회의 부의(최장 60일)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다. 이때 각기 기간 내에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함으로써 법안의 심의 과정이 무한정 늦춰지는 것을 막고 있다. 그래서 최장 330일이 차면 신속처리대상법안은 본회의에서 자동적으로 표결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일은 상당히 줄여질 수도 있다. 이번 해당 법안이 소관 위원회나 법사위원회에서 각각 최장 기간이 꽉 채워지더라도 본회의에 부의되는 시점부터는 민주당 출신 국회의장이 서둘러서 표결절차를 가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각 법안이 국회 본회의나 소관 위원회에서 표결요건인 5분의 3 찬성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손해가 막심하다고 느끼는 정당이 있기 마련이고, 피해를 당할 것이라고 느끼는 의원이 생기기 마련이다. 우여곡절 속에 선거제도 개편안이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된다 하더라도 정작 국회의원 선거 직전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본회의 표결에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함정은 바로 지역구 국회의원이 253명에서 225명으로 줄어들고 비례대표가 47명에서 75명으로 늘어난다는 데 있다. 선거법 개정을 다루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들마다 다르고 언론에 따라 제시되는 구체적인 수치는 같지 않지만 각 시·도별로 선거구가 감소한다는 사실에는 차이가 없다. 예컨대 올 1월 기준 지역구별 인구 하한선인 15만3560명에 미달하는 지역구가 이번에 우선적인 통폐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인천에서는 연수갑과 계양갑이 해당된다. 28개의 선거구를 제주와 세종을 제외하고 줄여야 하니 나머지 시·도는 평균적으로 약 2개씩 선거구를 줄이게 된다.

현재 언론에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는 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의 계산에 따르면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할 때 선거구가 서울은 현재 49개에서 42개로, 경기는 60개에서 57개로 감소한다. 또한 강원과 충북은 8개가 7개로, 충남은 11개가 9개로 조정된다. 대구는 12개에서 11개, 경북은 13개에서 12개로 줄어드는 동시에 부산은 18개에서 15개, 울산은 6개에서 5개, 경남은 16개에서 15개로 준다. 광주는 8개가 6개로, 전북과 전남은 10개가 8개로 조정된다.

물론 선거구의 조정은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맡아서 한다. 그러나 그 전에 국회 본회의에서 신속처리대상안건을 무기명으로 처리한다. 이때 전국적으로 당을 막론하여 자기 지역구가 사라질 것을 우려하는 국회의원들이 어떤 선택을 할 지 모르는 것이다.
선거법 개정안은 이러한 이탈표를 막을 장치도 마련해두었다. 바로 석패율제이다. 석패율제는 지역구로 출마하여 낙선하더라도 권역별 비례대표로 출마를 동시에 보장해 구제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득표를 많이 했지만 아깝게 패배한 사람을 구제하는 방식으로 지역구가 통폐합되고 불리해져도 선거법 개정을 수용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 하지만 석패율제는 아예 자기 지역구가 사라질 현역 국회의원의 마음을 완전히 설득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권역별로 지역구 의석을 30%이상 차지한 정당에게는 석패율제가 전혀 적용되지도 않는다.
지금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서라도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 자리라도 더 확보하려고 바른미래당이나 민주평화당도 정의당이나 민주당의 선거법 개혁안에 합류했다. 그러나 정작 본회의 표결할 때에도 두 당이 지금과 변화 없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제1호 신속처리대상안건이었던 사회적 참사 특별법은 지정 334일째인 2017년 11월 본회의에서 216명 출석, 찬성 162명으로 통과되었다. 이번 세 법안의 미래는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