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하는 방법 배우고 상대 이해하는 값진 경험했죠"
▲ <결혼 없이 함께 산다는 것> 이미지 컷. /사진제공=도서출판 밥

 

▲ 01· 91 커플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사진제공=도서출판 밥

 

▲ <결혼 없이 함께 산다는 것>에 함께 소개된 체크 리스트. /사진제공=도서출판 밥


'결혼'은 남녀가 정식적인 부부의 관계를 맺는 일련의 제도를 말한다. 이 '결혼' 대신 '동거'를 택한 남녀가 늘어나면서 '동거 부부'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곱지 않다. 동거하는 남녀는 '문란하다', '무책임할 것이다' 등 따가운 사회적 편견만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여기 세상을 향해 반기를 든 남녀가 있다. 결혼 없이 1년간 함께 살아온 01(男), 91(女)이 전한 솔직 담백한 '동거 일기'가 지금 시작된다.

같이 밥을 해 먹고, 청소도 하고, 책도 읽고 그렇게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 더 많은 순간을 '함께'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전부다. 그 생각과 동시에 우리는 하나의 벽에 부딪힌다. '결혼'이라는 벽.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결혼이라는 것을 배제하고 생각해보면, 함께 사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 된다.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다른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 결혼만 배제해도 우리는 당장 함께 살 수 있다. 생각의 끝에 우리는 결혼 없이 함께 살기로 했다. 우리는 지금 함께 살고 있다.
<결혼 없이 함께 산다는 것 01의 기록 中에서>

우리 이제부터 함께 사는 거야
'동거'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어감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적어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그렇다. 사랑하는 남녀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결혼'이라는 제도가 수반돼야 했고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허락될 뿐이다. 그러나 청년 세대들이 바라보는 동거에 대한 시각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 <결혼 없이 함께 산다는 것>의 저자 01과 91이 1년간 함께 살며 겪은 일상의 소소한 기록들을 책으로 엮어 출간했다.

"책 제목으로 동거라는 단어를 일부러 쓰지 않았어요. 이 사회에서는 동거라는 말이 마치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처럼 부정적인 뉘앙스로 들리거든요. 그 같은 편견들과 인식이 조금이나마 바뀌길 하는 바람이 들었죠. 또한 동거를 앞둔 커플에게 저희 커플이 동거한 경험을 토대로 실질적인 방법들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책을 내게 됐습니다. (01)

올해 4월에 발행한 따끈한 신간. <결혼 없이 함께 산다는 것>은 01과 91이 번갈아 가며 쓴 각각의 1년의 기록을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들과 함께 펴냈다. 특히 도서를 구매하면 동봉돼 있는 동거 생활 체크리스트를 통해 보다 서로를 이해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하고 있다.

"너무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남녀가 맞부딪히며 살아가기 위해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주말에는 늦잠 자는 것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일찍 기상하는지 또는 아침은 반드시 먹어야 하는지 등등 서로 다른 생활 습관들을 확인해 보자는 취지에서 체크리스트를 만들게 됐죠." (91)

프리랜서로 출판 관련 일을 하던 01과 91이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건 어느 행사 자리에서였다. 2년 전, 91을 만난 01은 작업을 함께 수행하며 마음이 잘 통했던 그녀에게 반해 적극적인 구애를 보냈다. 둘의 사이는 금세 가까워졌고 데이트 후 찾아오는 잠시 잠깐의 이별도 아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은 일생일대의 결심을 하게 된다. 이들 커플은 만남 후에도 헤어지지 않을 수 있는 최적의 방법으로 '동거'를 택하기로 했다.

"데이트를 하다 보면 대개 카페를 전전할 때가 많았어요. 반복되는 루틴에 하루 5~6만원의 데이트 비용을 감당해야 했죠. 이 비용을 한 달 꼬박 모았더니 월세에 버금가는 비용이 들더라고요. 차라리 같이 사는 것이 비용 절감이나 시간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점에서 효율적이란 생각이 들게 됐죠. 또 결혼이란 영원히 함께 살아갈 배우자와 맺는 제도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에 앞서 살아보는 경험은 배려하는 방법을 배우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값진 경험이라고 판단했습니다." (01)

"저 역시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이 동거의 장점이라 생각해요. 여름이면 지하철을 타고 카페에서 또 다른 카페로 돌아다니는 것만 해도 이미 진이 빠져버리거든요. 불쾌지수가 높아 질대로 높아진 상태에서 연인을 봐야 하는 것은 힘든 일이죠. 특히 서로에겐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작업 공간이 필요했어요. 성인이 된 후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기 위해선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하죠. 하지만 둘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동거는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어요. 무엇보다 동거가 좋은 건 서로 떨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삶의 하루를 같이 시작하고 같이 끝낼 수 있다는 것이에요." (91)

같이 눈을 뜨는 것도 좋지만, 동거를 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역시 함께 집에 돌아오는 것이다. 같이 살기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함께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와 나는 청소를 하고 너는 샤워를 하고, 네가 저녁을 차리면 나는 샤워를 하는 일.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나갈 때보다 설레는 일. 침대에 같이 나란히 누우면 이곳이 정말 집이구나, 하는 안도가 터져 나온다. 돌아오면 항상 네가 있는 곳. 기다리고 있으면 언제나 네가 돌아오는 곳.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어 이 소소한 삶을 조금씩 진전시켜 나가고 있다.
<결혼 없이 함께 산다는 것 91의 기록 中에서>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어
01과 91이 동거를 결심한 후 처음으로 보금자리를 마련한 곳은 경기도의 한 외곽 지역이었다. 수중에 있는 돈을 모아 놓고 보니 도심에 집값을 감당하기란 녹록지 않았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기엔 도심을 벗어난 이 곳은 첫 신혼집, 아니 '신거집(?)'으로 제격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시작은 출발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01과 동거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세요. 아니 알리지 않았습니다. 애시당초 반대하실 걸 너무 잘 알기에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한 번은 부모님과 드라마를 보는데 여자 배우가 남자 배우와 동거를 하다 부모님께 들통이 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말로 '동거할 수도 있지'라는 말을 건네니 아버지께서는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딸은 안된다'고. 그때 깨달았죠. 저희 부모님께서는 결코 동거를 허락해주시지 않을 거라고요." (91)

"91과는 반대로 저는 부모님께 동거 사실을 알렸습니다. 엄격하신 저희 부모님께서 처음부터 허락해 주실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남자라는 점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책임을 다하겠다는 저의 긴 설득 끝에 허락까진 아니더라도 믿음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 책을 보시고는 더욱이요." (01)

둘만의 본격적인 동거 생활이 시작됐다. 서로 다른 환경에 살아온 이들이 부모님의 도움 없이 오로지 둘의 힘으로만 세상을 헤쳐 나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사실을 숨겨야만 했던 91에겐 더 그랬다. 그러나 그녀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남녀가 함께하는 동거가 여성에게는 더 흠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해는 하지만 도리어 '여자가 손해야'라는 그 말 자체가 틀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저의 선택과 생각은 바뀌지 않아요." (91)

이들은 그들과 같은 난관을 겪고 있을 또는 결혼 없이 함께 살고자 하는 예비동거 커플을 위해 조언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부모님에 대한 효도가 부모님의 말을 다 따라서 하는 것이라 생각지 않아요. 부모님께 신뢰를 드릴 수 있도록 책임 있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야 말로 효도라 생각해요. 내 삶을 부모님이 책임져 주는 것은 아니잖아요. 물론 좋은 길을 안내해주실 수는 있지만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선 부모님과의 충분한 대화 시간이 필요합니다." (01)

너와 나 사이의 애정은 어떤 단어일까 자주 떠올린다. 네가 나에게 되어주려 하는 영원(01)이라는 것이, 내가 너에게 되어주려 하는 구원(91)이라는 것이 어느 끝에서 맞닿아 있을까 꿈마다 고민한다. 우리에게 남은 날이 지나간 날보다 적어질 때, 시곗바늘의 끝엔 그것이 걸려 있을까. 아니면 그제야 주머니를 뒤적이면 그것들이 원래부터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걸까. 사실, 모든 건 서로의 얼굴 안에 다 있다.
<결혼 없이 함께 산다는 것 91의 기록 中에서>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