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예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이학박사
▲ 갈곡천 부안면 농원 앞 '칠게'.

 

봄기운이 만연한 5월, 만물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이다. 바닷가의 생물들도 예외일 수 없다. 하루에 2번씩 물이 빠지는 갯벌에서도 갯지렁이, 조개, 고둥, 민챙이, 게 등 바쁘게 활동 중이다.
이들 중 멀리서도 단연 돋보이게 움직이는 생물들이 있는데, 바로 칠게이다.
물이 빠진 평탄한 까만 갯벌을 보고 있노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칠게는 인천을 포함해 우리나라의 서남해안 갯벌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게이다.

칠게의 모습은 직사각형의 몸통에 갯벌에서 걸어 다니기 좋도록 다리 끝이 뾰족하며, 1쌍의 집게발은 갯벌을 떠먹기 좋게 주걱 모양으로 안쪽으로 휘어 있다.
대부분의 게들이 그러하듯 두 집게발의 크기는 비슷하며, 수컷의 집게발이 암컷보다 훨씬 크다. 여러 색으로 몸의 색깔을 화려하게 꾸민 게들과는 다르게 자신을 천적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갯벌과 같은 잿빛의 색깔을 선택했다.

칠게는 유독 겁이 많다. 갯벌 위에서 왕성하게 먹이활동을 하다가도 약간의 진동이 느껴지면 순식간에 굴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물이 빠진 후 갯벌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곳곳에 고여 있는 물위로 가느다랗고 긴 눈자루 2개가 나와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는 모습을 사방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겁이 많은 칠게가 갯벌 위에서 자신을 열심히 과시할 때가 있다. 4쌍의 다리를 쭉 뻗어 몸을 최대한 높이고 마치 만세운동을 하듯 한 쌍의 긴 집게발을 위로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자신을 알린다.
이는 멋진 춤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건강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를 암컷에게 알리는 구애 행동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고 칠게를 '화랑게(춤추는 게)'로 표현했다. 넓은 갯벌을 무대로 많은 칠게들이 나와 모두 집게발을 올렸다 내렸다하는 모습이 정약전에게는 마치 군무를 추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칠게는 크지도 예쁘지도 않지만 생태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동물이다. 사람들에게는 예전부터 게장, 튀김, 볶음, 죽, 강정, 젓갈 등의 음식으로 널리 활용되며, 도요새나 낙지에게는 좋은 먹이가 된다.
또한 주걱처럼 휘어진 집게발을 이용해 갯벌의 유기물을 열심히 걸러 먹어 갯벌의 청소부 역할을 하고, 칠게들이 파놓은 구멍으로 인해 갯벌에 산소가 공급되어 갯벌을 건강하게 만든다.

이런 이로운 칠게가 요즘 개체 수 급감의 위협을 받고 있다. 해안가의 개발로 인간의 무관심 속에 모래나 진흙이 갯벌로 유입되어 서식처를 잃어가고 있다. 또한 낙지가 좋아하는 먹이인 만큼 사람들은 낙지 미끼로 사용하기 위해 위쪽이 뚫려있는 약 4m 정도의 기다란 플라스틱 통을 갯벌에 설치하고 칠게를 대량으로 남획하고 있다. 아무리 갯벌에 흔하게 보이는 칠게일지라도 이렇듯 한 번에 수백 마리씩 지속적으로 포획되고, 서식 환경이 영향을 받는다면 앞으로 갯벌에서 칠게를 쉽게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 인천에서 칠게의 남획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불법 어구를 수거하는 등 시민들이 갯벌과 칠게 살리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작은 희망을 가지고, 더 이상 인간의 욕심과 무관심으로 인해 칠게들이 사라져가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바람이 살랑대는 5월, 넓은 갯벌을 무대로 칠게가 추는 멋진 군무를 관람하면서 작은 생물들의 소중함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