斗頭我步帶春風(두두아보대춘풍)
봄바람 맞으며 두두미를 걷노라니
一府山川兩眼中(일부산천양안중)
온 마을의 산과 내가 한 눈에 들어오네.
明月綠楊諸具榻(명월녹양제구탑)
밝은 달 푸른 버들 여러 구(具)씨 탁상에서
滿杯麯味使人雄(만배국미사인웅)
잔 가득한 술 맛이 힘을 내게 하는구나.



심도(沁都)는 강화의 옛 이름이다. '심도기행'은 강화도 두운리의 선비 고재형(1846-1916)이 지은 기행문집이다. 그러니까 고재형이 1906년 당시 강화도의 200여 마을 명소를 직접 돌아다니며 그 명소를 주제로 256수의 한시를 짓고, 그 아래에 각 마을의 유래와 풍광, 인물, 생활상, 관습 등을 설명한 산문을 곁들인 기행문집이 '심도기행'이다. 저자가 직접 관찰하고 만나고 들은 내용을 생동감 있고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어 문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20세기 초 강화도의 '민속지'나 '지리지'로도 손색이 없다고 한다.
여기 소개한 시는 그 첫 수이다. '두두미'는 기행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다. 고재형이 살던 인정면(현 불은면) 두운리 두두미 마을 입구 안내판에 이 시구가 그대로 적혀 있다. '띠를 두른 듯 살랑대는 봄바람을 허리에 차고 거닌다'(步帶春風)는 첫 구절에서 여유를 즐기며 봄을 만끽하는 화자의 모습이 연상된다.
여유가 동반되기에 "온 마을의 산과 내가 한 눈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여유를 즐기는 자이니 물질적으로 풍요로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여유는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느긋한 마음 상태에서 나온다. '밝은 달'과 '푸른 버들' 그리고 '잔 가득한 술'이면 족하기 때문이다. 그 술도 '누룩(麴)' 맛이 나는 것이니 막걸리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유를 잃고 살아간다.

물질적 풍요는 100여 년 전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일상을 살아야 하고 그런 일상은 우리에게 시간을 앗아갔다. 생물학적인 수명이 연장된 대신에 한가로움을 잃고 산다. 조급하다.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 상태 때문이다. 하지만 여유는 이런 조급함과 팍팍한 삶의 언저리에 놓일 때 더 가치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시는 '우리는 왜 사는가'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담고 있다.
두두미 마을을 비롯하여 강화도에는 '강화 나들길'이 조성되어 있다. 4월 말에도 개나리와 진달래 등 다양한 꽃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세파(世波)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쫓기고 있다면, 더 늦기 전에 '강화 나들길'을 한번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강동우 문학평론가·가톨릭관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