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매고 남은 끈으로 '소확행'
▲ 이양호 장인이 직접 만든 노끈 공예작품을 들고 웃고 있다.

 

 

▲ 이양호 장인의 노끈 공예작품들.

 

어릴 적 어깨너머 배운 짚풀공예
활용 꽃병·모자·가방 제작 전시
동두천문화원 강사직 제의 받아
취미로 부담 없고 치매예방까지
타지역 소문나 '인기 강좌' 등극

#노끈의 색다른 변신

알록달록 색깔을 내는 공예품들이 저마다 다른 문양을 내며 멋스럽기 그지없다. 가방이며 신발이며 각양각색의 이 공예품들은 실생활에 사용해도 전혀 무리 없을 만큼 내구성까지 갖췄다.

작품인지 제품인지 구분조차 어려운 이 모두가 놀랍게도 포장용 노끈, 혹은 비닐 노끈으로 만들어진 공예품이다. 폴리프로필렌 재질의 이 노끈은 끈이라는 본래 용도에 맞게 물건을 매거나 꿰는데 쓰이지만 이양호 장인에겐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없어서는 안 될 주재료이다.

"노끈만 있으면 여러 종류의 제품들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꿰는 형태나 방법에 따라 다양한 무늬를 낼 수도 있어 공예품을 만들어 내기에 손색없는 재료입니다."

이 장인은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남다른 손재주로 동두천 사당골의 '노끈 박사'로 불린다. 멍석이나 바구니부터 연필꽂이, 접시, 찻상, 가방, 신발, 모자, 꽃병, 반짇고리, 휴대전화 케이스에 이르기까지 노끈으로 만든 물건의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특히 공예품마다 각기 다르게 나타난 화려한 문양은 이 장인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기술이다.

"눈으로 보면 웬만한 물건들은 이 노끈 하나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한 달까지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지만 완성 된 후엔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대개 종이끈을 사용하거나 도리어 현시대에 와서 볏짚으로 공예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비닐 노끈을 활용한 노끈 공예가는 이 장인이 유일하다.

"밭에 고추 줄을 설치 할 요량으로 노끈을 사게 됐죠. 줄을 세우고 나니 한 가득 남아 있는 노끈을 활용할 방법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이걸 가지고 어떻게 쓸까 고민하던 차에 어린 시절 볏짚을 가지고 여러 물건을 만들던 생각이 스쳤습니다. 한번 그때 기억을 떠올려 뭘 만들어보자 해서 시작한 것이 벌써 10년이 됐습니다."

남은 볏짚으로 갖가지 생활용품을 만들던 모습은 유년 시절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던 이 장인이 늘 보아오던 풍경이었다.

때때로 부모님을 도와 어깨너머로 짚풀 공예를 배워 온 그는 쓸모없던 볏짚이 실생활용품을 만들어 지던 것을 떠올리며 남은 포장 노끈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한참 전에 기억이지만 몸에 밴기술들은 곧 작품으로 드러났다.

"일평생 공직생활을 해오다 정년퇴임 후부터 손대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노끈입니다. 취미 삼아 만들기 시작한 공예품들은 처음엔 한 두 개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500여점에 이릅니다."

#노끈이 선물한 '제2의 인생'

70세의 늦은 나이로 시작한 노끈 공예. 그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10년 전이다.
당시 백중절을 맞아 지역 행사에 참여한 이 장인은 몇몇 가지 노끈 공예품을 내놓았고 이를 눈여겨본 동두천문화원 직원이 노끈 공예 강사직을 권유하면서 현재까지 지역 주민들을 만나 오고 있다.

이후 경기복지재단 '어르신 즐김 터' 사업으로 확대되면서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타 지역의 수강생들까지 노끈 공예를 배우기 위해 동두천문화원을 찾았다.

"값싼 재료비로 실생활에 유용한 공예품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노인들의 치매 예방이나 건강 증진에도 큰 보탬이 되고 있습니다. 노끈 공예는 적적한 노년의 삶을 보내는 분들에게 활력소가 돼 주고 있습니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와 저렴한 가격, 변색이 없어 오래도록 보관이 가능하다는 점이 노끈 공예 작품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무엇보다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노끈 공예가 인기 강좌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평균 나이 70세의 동두천문화원 수강생들은 해마다 본인이 만든 작품을 전시하며 뜻깊은 시간을 보내오고 있다.

최근 동두천 대표 축제인 소요단풍문화제에서 전시회를 가진 이양호 장인과 동두천문화원 수강생들은 우수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다. 특히 동두천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의 눈에 띈 우리 전통 멋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한미 문화행사에서 우리 공예품을 전시한 적이 있었는데 미군들이 보고는 상당히 신기해합니다. 고작 비닐 끈을 가지고 다양한 물건을 만들고 무늬를 내는 것을 보며 놀라워했죠."

손가락 마디마다 박힌 굳은살이 그간 이 장인의 삶을 엿보이게 했다. 노끈 공예로 제2의 인생을 맞이했던 그는 노년기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처음에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결심하는 과정이 매우 어렵지만 가까운 노인회관이나 문화센터를 찾아 소소한 취미 생활을 하며 즐거운 노년의 삶을 보내시길 적극 추천합니다."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