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 '여혐' 시원하게 긁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기획, 손희정·최지은 외 7명 지음, 후마니타스, 376쪽, 1만8000원
1987년 창립한 한국여성노동자회(한국여노)는 가정과 일터, 사회에서 이뤄지는 모든 노동에서 성평등이 실현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매년 3000여건의 노동 상담과 여성 노동 관련법 제정·개정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여노'가 기획해 2015년 4월, 처음 방송한 팟캐스트 '을들의 당나귀 귀'는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속 시원히 말하는 방송을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2016년 시즌2부터는 '성평등 노동'편과 '대중문화와 젠더'편으로 나눠 제작해 왔고, 2018년까지 시즌1~4, 총 101차가 방송됐다. 곧 시즌5가 시작된다.

책 <을들의 당나귀 귀>는 2016, 2017년 두 해 동안 시즌2, 3에서 방송된 '대중문화와 젠더(20여편, 35여회차)' 편에서 가려 뽑은 내용을 단행본에 맞게 수정, 보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중문화와 젠더 편 게스트였던 최지은, 허윤, 심혜경, 오수경, 오혜진, 김주희, 조혜영, 최태섭이 이 책의 저자로 참여해, 방송에서 전달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쉽게 다듬었다.

각 글의 맨 뒤에는 최근의 경향을 덧붙여, 주제별, 분야별로 하나의 이슈가 드러내는 징후와 그 맥락이 어떻게 유지되고 확장되는지 살필 수 있도록 했다.

이들 페미니스트 활동가, 문화비평가, 대중문화 연구자들의 유쾌하면서도 핵심을 짚는 메시지는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대중문화 텍스트들을 페미니즘 관점으로 읽어 낼 수 있는 명쾌한 언어와 날카로운 감각을 제공한다.

이 여정은 답답하고 가려운 곳을 적확하게 긁어 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약동하는 페미니즘 서사와 여성 연대의 가능성을 상기한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이성애-결혼-출산-양육의 '정상가족' 프레임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는 방송 프로그램, 엄마와 딸, 아내, 연애 상대 말고는 '주체'로서 상상되지 못하는 빈약한 여성 캐릭터들,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여성 혐오' 텍스트에 지친 독자들이라면, 누구라도 즐겁게 동행할 수 있을 것이다.

방송인 박미선씨는 추천평에서 "저는 예능이라는 전쟁터에서 맨몸으로 32년을 버텨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 전쟁터에 나가지도 못합니다. <을들의 당나귀 귀>를 읽으면서 제가 왜 맨몸으로 싸워야 했는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때로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속 시원하게 얘기해 주셔서 여러 번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저를 포함해, 전쟁터에 나가 보지도 못하고 스러져 간 동료들을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이제 여러분들 차례입니다. 이 책을 읽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되는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