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공간, 추억하면 영원하다
인천토박이 어린 날 '보물장소' 기록
'캔모아' '송도유원지' 2030공감 불러
▲ 윤민아 글·그림, 다인아트, 136쪽, 1만원


"사라졌다고 해서 꼭 잊혀져야 하는 법이 있을까요. 꼭 거대한 유산이 아닐지라도, 거창한 유적지가 아닐지라도 나에게 추억을 준 모든 공간이 우리에겐 보물입니다."(프롤로그 5쪽)

변화무쌍한 도시 인천의 모습들을 지금의 20, 30대가 기억하고 있는 추억의 장소와 지켜야할 장소로 나눠 '보물'처럼 기록한 책이 나왔다.

인천 토박이로 20살까지 동구 송현동에서 살다 지금은 중구 연안동에 살고 있는 저자는 어렸을 때 엄마, 아빠, 언니 등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갔던 장소가 지금은 사라져버린 기억 속 장소를 그림과 글로 채웠다.
'사라진 곳'과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곳'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의 어린시절 추억과 기억이 담겨있던 공간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준다.

동인천의 '캔모아'는 20살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젊은 사람들이 가볍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과일과 쥬스를 팔고 천장에서 내려오는 그네의자에 앉아 무제한 리필이 가능했던 식빵과 생크림을 먹거나 돈이 없어 빙수 하나를 여러 명의 친구들과 나눠먹었는데 이제 돈은 생겼지만 가게가 없어져 아쉬워한다.

인천백화점 옥상은 '하늘정원 같이 생긴 놀이터'에서 언니, 오빠, 가족들과 찍은 사진이 많이 있던 곳이었는데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롯데, 신세계 백화점과 같은 거대자본에 밀려 문을 닫았다.

박문여중은 새우깡을 좋아하던 수녀님이 수업을 가르쳤고, 반 이름을 1반, 2반처럼 숫자로 나누지 않고 진·선·미·성·현·경·신으로 나눠 좋았던 '성당을 품은 학교'였는데 송도국제도시로 이전하며 남녀공학으로 바뀌었고 예전의 송림동 건물은 청소년복지센터로 변했다.

송도해수욕장은 인천사람이라면 여름날의 추억이 꼭 하나씩 담긴 아련한 곳이었는데 지금은 폐장되어 중고차수출단지가 됐다.

동인천 맥도날드는 아홉 살에 '햄버거에 딸려 나오는 장난감' 때문에 사달라고 졸라대는 자매를 데리고 간 엄마, 아빠와 처음 만난 곳이고, 열아홉 살의 맥도날드는 2층 창가 '명당' 자리에 앉아 300원짜리 콘 아이스크림을 시켜 먹던 돈 없고 갈 곳 없는 학생들의 안식처였다. 스물아홉살 언저리에는 아르바이트 청년들의 '최저시급 1만원' 울분이 처음으로 수면위로 올라온 곳이다.

'맥 딜리버리'라는 빛의 속도로 배달을 강요받는 친구들과 2000원으로 한 끼를 때우는 취업준비생까지 햄버거만큼 다양한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이어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곳이다.

익숙한 곳에서 편하게 영화를 보고 싶은 '애관극장'도 오랜 친구처럼 변하지 않고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드는 곳이다.
"사라진 곳엔 유독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 많았습니다. 인천이 유치원, 초등학교가 아파트 단지 안에 있고, 학원이 가까운 지역으로 변화하기보다는 예전처럼 어린이들이 도시와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추억을 만들어 태어난 곳을 사랑할 수 있는 지역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자는 성신여자대학교에서 동양화과를 전공했다. 2015년 아동문학 전집 3권과 독서평설 삽화작업으로 일러스트 작가 생활을 시작해 어른과 아이가 함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