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연 경기 수원시 권선구 주민

얼마 전 집 베란다 천장이 누수된 적이 있다. 관리사무소에 전화해서 누수 상황에 대해 말하고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물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시설 관리 기술자를 보내 우리 집을 점검하고 윗층 세대의 베란다를 살피고 갔다. 문제의 원인은 윗층 세대의 베란다 바닥 균열 때문이었다. 관리사무소에 직접 찾아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보았지만, 윗층 세대와 아래층 세대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며 윗층 세대에서 언젠가는 해 줄 거라는 답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관리사무소가 윗층 세대와 아래층 세대 사이의 갈등을 적극적으로 중재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발을 빼기 바빴다. 지금 이 상황을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할까. 막막했다. 생면부지의 동 대표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멋쩍었다. 솔직히 동대표가 누구인지, 몇 호에 사는 지도 몰랐다. '우리 아파트의 동 대표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아파트의 운영 상황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다면 이러한 난감한 상황에 동 대표에게 하소연 할 수 있었을 텐데…'. 후회가 밀려왔다. 대통령·국회의원 등 큰 선거만 생각하고 정작 나에게 소중한 생활 속의 선거에 무심하였던 대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대통령·국회의원 선거보다도 조그만 아파트 동대표 선거 같은 생활 속의 선거는 그야말로 미지의 영역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누가 후보로 나왔는지, 그 후보들의 공약은 무엇인지, 그리고 선거일은 언제인지 등을 알지 못한다. 후보들도 본인을 입주민들에게 알리려 하지 않는다. 아파트 게시판이나 소식지에 선거관련 공고문이 있어도 무관심해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아파트 선거 같이 사소한 선거들은 그저 귀찮은 일일 뿐이고 깜깜이 선거로 치뤄진다.

얼마 전 '스윙보트'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정치와 선거에 무관심하며 별다른 직업 없이 낚시와 맥주로 소일하는 한 중년 남성이 박빙의 승부를 벌이는 공화당과 민주당 대통령후보의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되는 상황을 코믹하게 그려낸 영화였다. 10일간의 재투표까지의 기간 동안 주인공은 각 정당의 후보자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회유를 받는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1표의 가치를 깨닫고 유권자의 신성한 책임의식을 각성하며, 소중한 1표를 행사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동 대표 선거에도 관심을 가지고 하나 하나 살펴보면 후보들 사이에 경쟁이 생기고, 더 나은 공약과 실천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스윙보트 영화에서 주인공의 예전 모습처럼 무관심하게 그냥 주어지는 대로 살지 않는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더 좋아지지 않을까. 무관심은 가장 최악의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만들어 해당 지역 주민들에 대한 배려보다 본인들의 안위와 복지부동을 나을 뿐이고 그 피해는 입주민들이 고스란히 입게 된다. 언제쯤 관리사무소의 속 터지는 복지부동에 발을 굴렀던 경험과 기억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정유연 경기 수원시 권선구 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