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역사 원정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3만리 발자취를 따라서-자싱·항저우] 백범, 호수 위 조각배에 숨어 일제 총구를 피하다
[청소년 역사 원정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3만리 발자취를 따라서-자싱·항저우] 백범, 호수 위 조각배에 숨어 일제 총구를 피하다
  • 이주영
  • 승인 20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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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 '홍커우공원 의거' 이후 상하이 떠나 저장성 피난길
밀정 암살 위협 속 자싱·항저우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맥 이어가
▲ 자싱 매만가 소재 김구 피난처에서 '청소년 역사 원정대' 학생들이 김구가 피난 때 사용했던 나룻배를 살펴보고 있다. /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

 

▲ 하이옌 재청별장에 마련된 김구 전시관을 '청소년 역사 원정대' 학생들이 둘러보고 있다. /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

 

▲ 항저우 호변촌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구지 기념관에서 '청소년 역사 원정대' 학생들이 전시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 3만리 발자취를 따라서'를 시작한 4월6일, 상하이 곳곳에 깃든 '조국 독립'의 흔적에 절로 숙연해졌다. 홍구공원(현 노신공원)에서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둘러보고 만국공묘(송경령능원)에 잠들었던 옛 독립운동가의 무덤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상하이 마지막 임정 청사가 있는 마당로를 방문했다.


상하이 첫날밤, 와이탄(외탄)을 더듬으며 독립운동가들이 망국의 설움을 씻으며 상하이에 첫 발을 내디뎠을 선착장을 그려봤다. 상하이와 인천은 황해로 막혔지만, 밤새 독립의 꿈으로 뒤척였을 터.

4월의 중국도 조국과 같이 푸르렀다.

상하이를 뒤로 하고 임정이 짐을 싸고 유랑 생활을 이어간 자싱(嘉興)과 하이옌(海鹽)을 지나 항저우에 닿았다. 장강의 습함을 온 몸으로 이겨냈고, 남방에서 불어오는 초여름 봄바람에 이마를 닦았다. 그리고 금세 불어닥친 비바람에 온몸을 홀딱 적셨지만 3만리 임정길 보다는 수 백 갑절 편하고, 아늑한 지금의 탐방길을 고마워했다.

▲대장정, 길 위의 임정
상하이 임정은 안팎으로 고난이었다. 잊혀진 임정에 독립자금 수혈은 순탄치 않았다. 상하이를 뺀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독립운동이 이어졌지만, 노선과 이념탓에 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상하이 임정은 돌파구가 필요했다. 바로 매헌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공원 의거였다. 이는 임정에 또다른 기회이자 시련으로 다가왔다. "중국의 백만 대병도 불가능한 거사를 한국 용사가 단행하였다"는 장제스 중국 국민당 주석의 감탄은 곧 일제의 탄압이 거세질 것이란 경고이자 상하이 임정이 짐을 쌀 수밖에 없는 상황을 대변한다.

1932년 5월 상하이를 탈출한 임정은 일본의 감시와 공격을 피해 1940년 충칭에 도착하기까지 8년간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창 등 중국 각지를 옮겨 다녔다. 거리상 6000㎞가 넘는 대장정이다.

피난 시기 임정은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임정 대장정 시기를 버티지 못했다면, 우린 임정을 떠올릴 수 없을테다. 그리고 1945년 해방과 1948년 제헌국회는 절름발이 수준에 불과했을 터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학계의 주된 목소리는 장정의 시기(1932~1940년)를 독립운동사에 암흑의 시기로 폄훼한다.

중국은 옛부터 남선북마(南船北馬)로 유명하다. 남쪽은 배를 타고, 북쪽은 말을 탄다는 의미이다. 장강으로 대표되는 남쪽은 배를 주로 이동수단으로 삼았다. 임정의 장정길은 6300㎞에 달하는 장강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독립운동가 장정화가 쓴 책 <장강일기>를 통해 장강에서의 호된 피난길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가흥에 도착한 지 약 두 주일쯤 지나서 성엄(김의한)과 일파(엄항섭)가 백범을 모시고 가흥에 왔다. 일경의 현상금까지 걸려 있어 신변의 위협을 크게 받고 있던 백범은 공장에 머물지 않고 따로 그 공장의 공장장이며 저보성의 수양아들인 진동손(진동생이라고도 한다) 집에 숨어 있기로 했다. 그리고 그곳도 불안하다고 느껴질 때는 남호라는 호수의 배 안에 은신하기도 했다."

상하이 조계지에서는 프랑스라는 울타리가 임정을 지켰다. 하지만 임정의 장정은 스스로를 지켜낼 수 밖에 없었다. 김구는 절강성 자싱에서 피신 생활을 시작했다. 이 지역 유지 저보성의 도움을 받았다. 윤 의사 의거 후 거금 60만원의 현상금이 걸린 김구, 밀정 300여명은 김구를 쫓아 자싱 곳곳을 뒤졌다. 김구는 일본의 정보망이 작동되던 항저우를 피해 중국국민당 정부가 비밀리에 제공한 은신처인 자싱에 머물렀다. 임정 청사와 지도자가 따로인 임정 생활. 일단 살아서 버텨야 했다.

자싱은 남호의 관광지다.

임정 발자취 탐방에 나선 인천·서울의 청소년 13명의 청소년 역사 원정대는 4월7일 남방지역 특유의 회색빛 벽돌로 둘러싸인 주택 사이에서 '김구 피난처'를 만났다. 자싱의 말끔한 경관에 다소 마음을 놓았고 김구 피난처가 안락하진 않아도 깨끗했던 것에 감사했다. 이 곳을 둘러보며 김구의 숨결을 조금이라도 느끼려 곳곳을 살폈다. 김구가 피난 때 타던 나룻배를 어루만지며 물 속에서 썩지 않을까 걱정하고, 김구가 잠시나마 긴장을 풀었을 욕조를 살폈다. 그러나 이 욕조는 갓난아이도 누울 수 없이 좁다.

김구 피난처 3분 거리에 임정 요인 거쳐가 있다. 1층은 주방과 회의실로 2층은 숙소로 썼다. 2층 오른쪽부터 김구 어머니 곽낙원과 아들 김신의 방, 김의한 가족(장정화·김후동)의 방, 엄항섭 가족(연미당·엄기선·엄기동)의 방, 마지막 이동녕의 방으로 이어진다. 나무로 짠 침대 위를 매만졌다. 과연 이 곳에 두 발을 뻗을 수 있을까. 청소년 원정대는 자싱시 일휘교 길 위에서 저마다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4월의 습함과 무더위에 지친 청소년 원정대는 발길을 재촉해 하이옌을 향했다. 절강성 자싱시 하이옌현 남북호풍경구라는 관광지 안에 자리한 재청별장(載靑別莊)이라는 곳을 찾았다. 공원 앞에서 입장표를 구입하고 셔틀버스로 5분의 산길을 달려 재청별장에 닿았다. 하늘 높게 뻗은 대나무가 별장의 운치를 더해준다. 2001년 김구 전시관이 증축됐고, 재청별장 후원에 김구의 둘째 아들 김신이 쓴 '음수사원, 한중우의'가 새겨진 기념비가 있다. 이 건물은 주가예의 숙부인 주찬경의 별장으로 남북호 호반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김구는 이 곳에서 5리 정도 떨어진 조그만 국수집에 들렸다가 일본인에 적발돼 약 반년간의 하이옌 생활을 끝내고 다시 자싱으로 돌아갔다.

▲임정, 중국 역사에 바투 서다
임정이 자싱·하이옌을 떠나 항저우에 머물던 시기는 1932년 5월부터 1935년 11월까지 3년 반이다. 항저우 첫 둥지는 군무장 김철 숙소였던 청태 제2여사32호실. 그러나 이 곳은 1967년 '군영반점'이란 명칭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현재 한정쾌첩 호텔로 쓰이지만 절강성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호텔에 양해를 구하고 옛 임정의 숨결을 느끼려 호텔 곳곳을 둘러봤다. 옛 중국 영화에 나올법한 모습이다. 사방의 각 호실이 건물 중심부를 향해 열려 있다. 침대 하나 가구 하나가 전부인 단촐한 살림살이, 그리고 복도 옆 창문을 통해 언제 닥칠지 모를 위험에 늘 긴장해야 했던 임정 요인과 가족들. 청소년 역사 원정대는 어둑한 복도 끝에서 임정의 '독립' 의지를 손끝으로 느낀 듯하다.

이후 임정은 호변촌 23호로 옮겼다. 항저우 시는 지난 2002년부터 건물을 보수·정리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구지 기념관'을 2007년 11월 세웠다. 항저우 기념관 옆은 호텔로 쓰이는 등 인근의 '핫 플레이스'다. 4월8일 임정 요인의 힘든 항저우 생활을 체험한 청소년 역사 원정대는, 인근의 아리따운 옛 건물의 매력에 빠졌다. 그리고 남송의 임시 수도 항저우의 역사 속 현장을 둘러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항저우 임정 인근에는 서호가 있다. 중국의 손꼽히는 관광지이자 전설 속 중국 미녀 중 한 명인 서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서호에서 뱃놀이를 하며 백거이와 소동파와 같은 낭만에 빠졌다. 임정 요인들도 현실의 갑갑함을 이 곳 서호를 둘러보며 잠깐이라도 편했길 바라며.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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